BundleE 2020. 9. 24. 18:27

“이 통일성이 성, 인종, 신분의 피상적 차이에 기반을 둔 본래의 자연적 동일성이 아니라 그것들에 대한 일반적인 가치 평가의 지속적 차이들을 파괴하는 사건과 하나가 되는 연대성이다.” (존 바클레이, <바울과 선물> 670쪽)

 

바클레이의 ‘선물’개념에 기반한 갈라디아서 주해 부분을 꼼꼼히 읽어보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들을 가끔 만나곤 한다. 예를 들면 위와 같은 경우인데

 

이 통일성: 갈 3:28 세례공식의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선언 - ok

 

성, 인종, 신분의 피상적 차이 -?

성과 인종과 신분이 같은 범주로 묶일 수 있는가? 피상적 차이라는 기준에서?

성의 차이는 피상적인가?

인종 즉 문화, 언어, 역사의 차이는?

 

이것들 중 피상적이라는 말과 어울리는 것은 신분...정도일 것 같은데?

 

그런데 그 피상적 차이에 기반을 둔 “본래의” “자연적” 동일성은 또 무슨 말이지?

 

성과 인종과 신분의 다름 사이에는 검은 골짜기가 놓여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본래의” “자연적”이라고 말하는가? “본래의” “자연적”이라는 형용사가 가진 정치적 함의.

 

여기서 동일성은 같은 성과 같은 인종과 같은 신분사이의 동일성을 말하는 것인가?

 

내가 무식해서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의 언어가 부주의한 것인지 모르겠네. 그와 내가 서 있는 자리를 가늠해보자면 전자의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지레 굴복하여 후자의 가능성을 지워버리지는 않겠다. 세계적 학자를 비판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용기보다는 후안무치의 정신이 필요한 듯.

 

여기 우리들의 신학 팟캐스트

팟빵 : podbbang.com/ch/1769565

네이버 오디오클립 : audioclip.naver.com/channels/2453

팟티 : podty.me/cast/194201

iTunes : bit.ly/theoyws

 

'구독'과 '좋아요'와 '댓글'은 언제나 환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