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학생 나부랭이 입니다.
방송클립은 참 신기해서 온라인상에 공유되고 있는 이상 그것은 언제나 현재형인가보다. 나 역시 즐겨듣는 팟캐스트의 최신 업로드가 소진되면 몇 년 전 것까지 거슬러 올라가 듣기도 하니까.
얼마 전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서 양혜원박사 편을 들은 청취자가 비판의 댓글을 남겼다. 여러모로 안타깝다고 하셨고 (당신들) 신학자가 맞느냐고 질문하셨다.
우린 신학자가 아니다. 그 방송에 참여했던 이들 중 그나마 신학을 접해본 사람도 나 하나 뿐. 다른 분들은 그저 진지한 크리스천, 비판적 가나안성도, 경건한 무신론자. 벌써 2년이 흘렀건만 나는 여전히 신학자가 아니라 헤매고 있는 신학생에 불과하다. 우리의 이야기에는 많은 오류와 헛점이 있고 우리는 흥분 가운데 품위를 잃기도 했다/한다.
"인간에 대한 총체적 이해보다 여성을 피해자로서 이해하는 경향이 앞서고 계시기에 토론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과정동안 여성이 생물학적으로만 존재하고 살아간다고 생각하시나봐요. 그리고 "성공"의 개념을 사회에서 정의한 "부와 명예와 지위를 얻음"으로만 보시고 계시고요. 인간이 한 아이를 잉태하고 출산하고 기르는 행위는 "성공"이 될 수 없는건가요? 성경이 성공을 그리 말하지 않는데"
듣는 분이 이렇게 들었다면 딜리버리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과정 중에도 여성은 물론 한 명의 온전한 인간이다. 아마도 우리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여성이 단지 생물학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여성을 그런 눈으로 본다는 것이었을 것이다.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여성은 "모성"에 충실할 것이 요구되고 그 외의 욕구나 고민, 충만과 결핍은 지워진다. 만족할만한 모성을 보이지 않는 여성은 판단받고 비난받는다. 이런 모성성을 요구하는 것은 본성도, 하나님도 아닌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라는 의견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가 "성공"이라는 말을 중요하게 다루었다면, 여성의 성공이 임신, 출산, 육아가 아니라 사회적 성취에 있다고 말했다면 그건 우리의 생각이 아직 덜 여물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여성의 성공이 임신, 출산, 육아에 있다고 믿지 않지만(의미가 없다는 뜻과는 전혀 다르다!) 사회적 부와 명성에 있다고도 생각하지도 않는다. 양쪽 모두 주입된 개념의 "성공"이라는 의심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성공이라는 말 자체도 의심스럽다. 성경이 성공을 말하고 있는지도. 청취자가 지적한 대로 "성공"이란 여러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르나 우리가 사는 사회는 엄연히 객관적인 성공의 "기준"과 "척도"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자녀 양육을 무사히 마치고 중노년에 접어든 여성에게 당신은 성공했다고 말하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이 부자연스러운거다.)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과연 나나 하나님이 원하는 것인지 의심 중이다.
"말을 꼬투리잡아 비꼬는듯한...세상에 제시된 페미니즘과 예수의 여성존중태도는 동의어가 아닌데...신나님은 그것을 전제하고 양혜원박사 글을 보는것 같은 느낌..?적어도 신나님보다는 페미니즘에 먼저 주목하고 연구한 사람인데 그런 사람의 글을 이해해보려는 노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본인이 이해한 패미니즘의 렌즈로 비판하고 계신것 같아요."미세스 아메리카" 만 보더라도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슐래플리가 그 누구보다 페미니스트적 인물로 묘사되요."
지적하신대로 우리는 비꼬는 말투로 말했던 것 같다. 우리의 심사가 꼬여 있었다. 교회에서 신학교에서 기독교라는 바닥에서 나이들어가고 있는 여성으로서 느끼는 당혹스러움과 분노와 좌절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고 믿었던 교회 언니가 배신을 때렸기 때문이다. 선배들이 반질반질하게 닦아놓은 길만 걸어본 사람들은 별도 달도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물 위에 혼자 떠 있는 절망감을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른다. 아니...없다. 여성들은 그렇게 자신이 누구와 함께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혼자!!" 고립된 채 선례가 없던 생각들을 하기 시작했다고 느끼고 있다. 그 생각은 교회에 의해 용납되지 않지만 더 괴로운 것은 나에게 조차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불경한 생각을 삭이며 뼈와 살이 삭는다. 이런 여성들에게 양혜원이 어떤 의미였는가를 생각하면 나는 우리의 꼬인 심사를 양혜원 박사가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페미니즘에 먼저 주목하고 연구한 양혜원박사가 나부끼는 페미니즘의 깃발을 보고 잔뜩 고무되었던 우리들은 그녀가 슬그머니 깃발을 바꿔치기 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어느새 그녀는 가부장적 복음주의 기독교의 기수가 되어 있었다.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양혜원박사는 그 누구보다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그녀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것, 그녀가 자신의 페미니즘도 페미니즘이라 주장하는 것은 페미니즘을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려는 치졸한 전략에 불과하다.
비아토르에서 그녀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슬슬 팔로우업을 할 때가 된 것 같다(언제 읽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 그녀의 생각은 어떻게 발전하고 얼마나 성숙했을까? 방송에서 말했던 것 같은데, 나는 양혜원박사가 페미니즘에 전선을 긋고 복음주의의 기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가 걸어오는 싸움이 좀 더 학문적이고 학구적이 되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기독교에 대한 이해도 좀 더 포괄적이고 치밀했으면 좋겠고, 자유주의 성서신학에 대한 지식도 기본은 갖추고 공격하셨으면 좋겠다. 페미니즘 신학에 대한 이해까지 바라면 너무한건가...
얼마전 다루었던 <다시, 성경으로>의 저자 레이첼 헬드 에반스는 여성학도 전공하지 않았고, 신학박사도 아니지만 성서와 신학에 대한 해박함과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건강한 시선으로 독자들을 성서 읽기와 그리스도인으로 살기에 대한 재고와 숙고로 초청한다.
나는 여전히 신학생 나부랭이에 불과하고 앞으로도 한참 동안은 그럴 예정이다. 그러나 박사가 된다면 뭐가 달라질까? 박사학위가 반장의 팔에 둘러진 완장처럼 다른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할만큼 온전한 지식과 견해를 보장할 수 있는가 말이다. 양혜원박사가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유독 양혜원박사를 둘러싸고 그녀의 여성학과 신학의 "전문가성"을 들먹이며 그녀의 의견을 두둔하는 이들이 많아서 하는 말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전문가"만이 자신이 얼마나 전문가가 아닌지 알고 있다는 것인데, 그는 자신이 전문가가 아니라고 절대 말하지 않는다. 전문가가 아닌 전문가들이 넘쳐나는 세상, 그 전문가들이 세상을 망가뜨리는 시대. 이반 일리치의 <전문가들의 사회>를 읽어보리라. (생각이 도약을 하다 도착한 곳이 이반일리치라니! 멋지군.)
여기 우리들의 신학 팟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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