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적 관점이 지니는 호출의 능력
"독자로 하여금 텍스트가 지향하는 - 대개는 가부장제의 유지, 존속에 기여하는 - 가치들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힘은 서사적 관점이 지니는 '호출(interpellation)'의 능력이다. 독자는 언어로 된 텍스트를 읽으면서 어떠한 정체성 속으로 불려 들어간다. 이 능력에 저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여성이 자신을 혐오하지 않고 생존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박정애, "근대적 주체의 시선에 포착된 타자들 - 염상섭, 『만세전』의 경우", 송명희,『 페미니즘 비평』, 한국문화사, 서울, 2012, 73-4
텍스트가 가지는 '호출'하는 목소리에 신의 권위가 얹혀지는 것이 성서다. 우리가 어떤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 짐작이 가는가? 성서, 신학, 교회에 관련된 대화는 빠르게 로고스/남성중심적 권력의 모판metrix 위로 옮겨진다. 남성의 목소리는 커지고 권위를 지니며 너무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평가자의 입장에 세운다. 반면 여성은 자신의 의견에 확신이 없으며 이렇게 해도 되는지를 묻고 스스로의 발화와 수행을 평가의 자리에 위치시킨다(아니면 위치를 지정당한다). 요즘에 이런 현상을 몇 번 의식했다. '이렇게 하는게 맞나요?' '이렇게 할까요?' '이렇게 해도 되나요?' '이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등등...'잘하시네요' '그게 맞습니다' '그건 틀렸구요' '총명하시네요' 등등...
여성이 확신을 가지고 발화하는 영역이 있으며 남성이 경청하는 주제가 있다. 그런데 그것 역시 남성이 "허용"하는 주제에 한에서 그러하다. 내가 아는 한 신학이라는 영역에서 남성은 구체적 주제 (다시 여성, 페미니즘..)가 아닌 한 여성의 목소리에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여성은 영원히 학생이며, 성도이며, 가르치고 계몽해야 할 대상이다. 나를 심란하게 하는 것은 이러한 남성의 시선(타자의 의식)이 자의식이 되어서 나 역시 나를 그런 존재로 본다는 것이며 여성의 의견보다는 남성의 의견에 무게를 싣고자 하는 강한 유혹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남성중심주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는 여러 층위의 온갖 장치들을 통해서 실을 쏘아댄다(스파이더 맨처럼). 그리고 이리 저리 마구잡이로 교차된 끈적한 거미줄이 나를 꼼짝 못하게 결박하고 있다. 이제 나는 그것이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도 모르겠다. 일순간 분기탱천하였다가도 요구된다고 여겨지는 여성적 역할을 의식하지도 못한채 수행하고 또 분개한다. 끝없는 자기 분열의 경험은 계급, 인종, 섹슈얼리티, 나이, 장애등의 교차 여부에 따라 파동의 폭이 더 커지게 된다. 숨을 쉬고 나를 나로 인식하고 나를 나로 살아가는 것이 이토록 힘겨운 일이어야 하는가...나의 삶, 생존과 관련된 문제에 천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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