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의 고통 vs 연민의 안락함
니체의 입장에 우리가 난감해하는 것은 그가 수치심에 대해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을 펼쳐서가 아니라 고결한 자의 수치심과 선한 자의 연민을 대비시키며 후자를 집요하게 비난하기 때문이다. 고결한 자와 비교했을 때 연민의 정을 지닌 선한 자는 사실 자기 역량의 최소치만을 사용한다. 그들은 고통의 상황을 그대로 두고서 아주 소량의 도덕적 선행만을 반복한다. 니체는 이런 도덕주의자들을 "마비되어 더이상 힘을 쓸 수 없는 그런 무기력한 앞발을 갖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자신이 선하다고 믿는 그런 겁쟁이"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앞발을 들어 약자를 해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만족하느라 분주한 통에 수치심을 느낄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역량, 즉 진정으로 행하고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고통 받는 이들을 불쌍하게 여기는 대신 그 고통 앞에 수치심을 느껴라. 연민이란 참으로 게으르고 뻔뻔한 감정이다.'
진은영,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 『눈먼 자들의 국가』,파주, 문학동네, 2014 (72-73쪽)
나는 연민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내가 마땅히 실현되어야 할 정의와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해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요청과 요구는 그들 앞에서 불경스럽고 오만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은 선한 미소를 띄거나 슬픈 표정을 지으며 내게 연민을 베풀어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다가 안면을 바꾼다. 그리고 말한다. 이정도 했으면 되었지 너무 한 거 아니냐고. 니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그분의 때를 기다리라고. 그들은 내가 과도한 것을 요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생존을 위해 건강을 위해 삶의 충만한 의미를 찾기 위해 일상적으로 누리고 있는 것들을 요구할 때 나 또한 그것을 "살기위해" 구하고 있다. 그러니 그것은 과도한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것이다.
마틴 루터 킹은 앨라바마 버밍햄에서 흑인인권운동을 이끌다가 투옥되었다. 버밍행 지역의 백인 목회자들은 공식적으로 마틴 루터 킹과 그가 이끄는 흑인인권운동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감옥에서 그들에게 긴 편지를 보낸다. 그의 논지는 성서에서 현대 신학자들을 아우르며 촘촘하게 전개된다. 그 편지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마틴이 흑인인권운동의 가장 큰 걸림돌로 백인 온건주의를 지목한 것이었다. 백인 온건주의자들은 흑인인권운동의 대의와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갈등이 고조될 때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가장 치명적인 방식으로 흑인운동가들을 좌절시켰다. 그리고 폭력은 안된다고 때가 아니라고 그러니 기다리라고 했다. "기다려라" 이것이야말로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자들의 한가로운 연민이 아니고 무엇인가? 수많은 흑인들이 육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죽어가는 현실에서 "기다리라"는 말은 계속해서 죽어가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에게는 인종차별의 갈등이 우리의 일차적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틴 루터 킹의 말에 매우 쉽게 동조할 수 있다. 우리는 백인이 아니니까. 흑인의 이야기에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대입해 읽어보라. 그것이 그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그럴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 우리도 "기다리라"고 말하는 중도적 백인 정도 되려나?
니체의 말처럼 그들은 "마비되어 더이상 힘을 쓸 수 없는 그런 무기력한 앞발을 갖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자신이 선하다고 믿는 그런 겁쟁이"에 불과하다. 나는 여성과 동성애자를 혐오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을 해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자들과는 다르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 당신을 지지하는 발언과 행동이 나의 입지를 위태롭게 할 것이다. "기다려라"
우리 살아가는 사회에 가지고 태어난 어떤 것에 의해 차별받고 고통받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얼만큼 수치스럽게 여기고 있을까? 나 역시 수치의 고통을 택하기 보다는 연민의 안락함을 택하고 있지는 않은가?
Martin Luther King Jr.’s ‘Letter From Birmingham Jail’
‘The Atlantic’ published this landmark document of the civil-rights movement in the August 1963 issue
www.theatlantic.com
여기 우리들의 신학 팟캐스트
네이버 오디오클립 : audioclip.naver.com/channels/2453
팟티 : podty.me/cast/194201
iTunes : bit.ly/theoyws
'구독'과 '좋아요'와 '댓글'은 언제나 환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