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신나(신학생 나부랭이)의 글

수사학적 요한복음서 읽기

BundleE 2021. 4. 11. 08:29

복음서 기자들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전승을 기록하고 변형하고 확장했을까? 복음서의 수사학은 어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것일까? 그들의 "새로운" 해석은 어떤 방식으로 권위를 획득할 수 있었을까?

게르트 타이센의 『복음서의 교회정치학 - 복음서에 대한 사회-수사학적 접근』은 이런 질문을 가지고 복음서를 해석한다. 타이센은 교회지도자의 임무를 5가지(기본적 종교적 전승의 수집과 각색을 통한 합의 창출, 공동체의 외부 관계 설정: 세계관 창조하기, 유대교와의 분리된 정체성 강화, 공동체의 내부관계 설정, 개인과 세대로부터 독립적인 권위 구조 형성)로 제시하고 각각의 임무 성취라는 관점에서 복음서를 해석하고 있다. 많이 흥미로웠다.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특히 인상깊게 읽었는데, 아마도 내가 요즘 이 두 복음서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한복음이 최소한 한 개 이상의 공관복음서를 알고 있었다는 주장도 반가웠다. 최근에 읽은 레이몬드 브라운의 "The Community of the Beloved Disciple"에서는 요한이 자기만의 독특한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고 보며, 느낌적으로는 그런 의견이 다수인 것 같은데, 나는 요한이 왠지 누가복음을 자신의 앞에 펼쳐놓고 있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이건 아직 느낌이고, 조금만 더 꽂히면 논문으로 발전시킬지도 모른다...). 요한복음이 유대교뿐 아니라 다른 사도적 그리스도 공동체와도 고립된 분파라는 해석(레이몬드 브라운, J.L. 마틴, 웨인 믹스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에도 쉽게 동의가 되지 않았는데(특히 베드로의 교회공동체와 반목했다는...), 타이센은 요한공동체 내부에 다양한 그리스도론이 존재했고 요한복음 기자는 이것을 자신의 복음서를 통해 통합하고자 하는 시도하고 있다고 말한다. 공동체 외부 그러니까 유대교와의 갈등이 심각한 경우 내부는 다양한 의견에도 불구하고 응집했을 것이고, 유대교와의 갈등이 좀 느슨할 경우 다양성이 분출되고 갈등했을 것이라는 가정이 그럴 듯 한 것 같다. 내가 웨인 믹스나 브라운의 의견에 동의하기 어려웠던 이유도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유대교나 로마 당국에 의해 심각한 박해를 받고 있을 때 내부적으로 그리스도론을 가지고 분열한다는 것이 쉬이 상상이 되지 않아서였다. 워낙 외부에 강력한 적이 생기면 내적으로는 더 쉽게 단결하지 않나...싶어서. 여튼 여러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다시 성서 본문을 읽어봐야겠다. 나는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

요한복음서에서 사탄은 이 세상의 지배자인 로마이며, 예수를 판 유다도, 예수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유대인들도 실은 로마를 나타내고 로마를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요한복음서 기자의 전략(?)이라는 주장은 의문이 남는다. 복음서는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믿고 싶은 욕구가 큰 것 같다. 복음서 기자들은 오늘날의 진보적 지식인들처럼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비판하고 거대한 제국의 힘에 저항했다. 이렇게 읽으면 엄청 멋있긴 하지만...복음서가 곳곳에서 유대교는 무지막지하게 다루는 반면 로마의 권력은 두둔하고 것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로마와 반목하면서는 생존할 수 없지만, 성전파괴 이후의 유대교와의 반목은 감당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을까...아주 실리적인 이유가 복음서에 반영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수사학적 목적을 염두에 두고 복음서 읽기. 어떻게 생각하면 너무 친근한 독서법인데, 어째서 이런 것도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해볼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는걸까? 성서라서 그런건가...쩝.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는데, 막상 쓰려니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것이 많다. 여전히 일독만으로는 저자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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