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신나(신학생 나부랭이)의 글

선택받지 못한 자들의 하나님

BundleE 2019. 12. 16. 22:40

창세기 25장 1절~8절 본문을 성경으로 읽고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선택받지 못한 자들의 하나님>

 

1-4절

아브라함은 사후에 유산을 둘러싼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고자 이삭을 제외한 다른 아들들을 멀리 떠나보냈다. שׁלח (보내다)의 피엘형이 쓰였는데, 이는 그들이 다시 돌아올 기약없이 멀리 보내졌음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아브라함이 그들을 덜 사랑했던 것은 아니다. 하나님도 선택된 자들을 통해 자신의 구원 계획과 약속을 이루어가시지만, 선택되지 않은 자들을 덜 사랑하시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이스마엘의 울음을 들으시고 물을 먹이셨고, 그가 자라는 동안 가까이서 돌보셨으며, 그에게서 큰 민족이 나오게 하리라는 하갈과의 약속을 지키셨다. 하나님이 선택된 백성의 신이라는 생각은 어디서부터 연원했을까? 하나님은 한 때 선민인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셨다가, 신약에 와서부터 지금까지 (제멋대로) 이스라엘을 대체한 기독교인의 하나님이 되셨다. 하나님은 동의하실까? 인간 아버지인 아브라함의 손이 닿지 않는 곳 어디에서나 하나님이 그의 아들들을 돌보셨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계시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이스마엘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12-18절

하나님은 이스마엘이 경험할 수 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부재를 당신의 관심과 사랑으로 채우셨고, 이스마엘은 마음이 넉넉한 어른으로 잘 성장한 것 같다. 아버지 집에서 쫓겨나 바란 광야에서 살고 있던 그가 동생인 이삭과 함께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러 온 것을 보라! 장성한 이스마엘에게서 우리는 분노와 원망대신 배려와 사랑과 애틋함을 본다. 브엘세바 빈 들에서 갈증으로 보채던 아이에게 하나님은 큰 민족이 나오게 하리라 약속하셨고, 성경은 하나님이 그 약속을 지키셨음을 보여준다. 창세기를 구성하고 있는 열 개의 족보 중 하나가 바로 12절, 이집트 사람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의 족보이며, 그는 무슬림의 조상으로 여겨진다.

 

선택받은 민족 이데올로기와 승자 중심의 사회는 어딘지 매우 닮았다. 교회가 승자 중심의 스토리를 구축하고 그것으로 홍보하고 그것으로 커가는 동안 ‘선택받은 민족의 이야기로 성경읽기’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에겐 어떤 종교가 손에 남았는가? 어떤 교회들이 목청을 높이고 있는가? 자본주의 논리에 굴종해서 최소한의 도덕과 윤리도 저버린 교회들이 군림한다. 두손 가득 현금을 쥔 주먹을 흔들어대며 그 돈이 자신의 ‘정당함’을 증거한다고 소리친다. 나의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니라고 할텐가? 우리의 교회에서는 누가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가? 또 누가 보이는가?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이는 또 누구인가? 우리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이들을 어떻게 어디서 찾아내야 할까...그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예수는 그들을 보고 싶으실텐데,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으실텐데, 정작 교회는 그들을 찾지않고 침묵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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