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25: 19-26절 리브가 이야기
창 25: 19-26절 리브가 이야기
19~26절 창세기 기자는 이삭의 족보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19절)”로 시작해 “리브가가 그들(에서와 야곱)을 낳았다(26절)”로 마치고 있다. 이는 어머니를 족보의 중심에 놓는 꽤 이례적 진술이다. 우리는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23절에서 앞으로 각각 ‘이스라엘’과 ‘에돔’이 될 자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리브가에게 계시되고 맡겨지는 것이다. 이 계시는 그의 쌍둥이 출산과 야곱의 장자권 상속을 거쳐, 거의 천년 후 다윗의 시대에 이르러 완전히 성취된다(삼하 8:14). 그가 이 계시를 이삭과 공유하지 않았을 리는 없다. 그러나 이삭은 하나님의 계획과 달리 몰래! 에서를 장자로 축복하려한다 (창 27:1~5). 하나님의 계시를 짐짓 모른체 할만큼 에서의 요리가 치명적으로 훌륭했나보다. 반면, 리브가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계시하고 맡기신 계획을 이해하고, 기억하고, 행동한다.(창 27:5~17).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된 이들에게 원하시는 삶은 이삭의 것보다는 리브가의 것에 훨씬 더 가깝다. 이해하고, 기억하고, 행동하기!
창세기에 이삭과 관련된 내러티브는 얼마 없다. 이삭은 내내 매력적이지 않은 다소 평면적 인물로 그려진다. 그가 잘한 것이 있다면 아버지가 그를 결박해 제단 위에 놓았을 때 가만히 있었다는 것 정도? 반면 리브가는 첫 등장(24장)부터 캐릭터가 살아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물을 구하는 노인에게 물을 주고, 그의 낙타까지 알아서 챙길만큼 사려깊고 친절하다. 소녀 리브가는 (부모의 의견을 먼저 묻지 않고) 노인을 자신의 집에 초대하고, 그 노인을 따라 가겠다는 결정도 주체적으로 한다(25장 57, 58절). 세월이 흘러 하나님의 신탁도, 성사된 장자권 거래도 무시한 채 이삭과 에서가 장자권 위임을 집행하려 할 때, 상황을 판단하고 지휘한 것도 역시 리브가였다.
어째서 성경해석은 가부장의 계보에만 집착하는 것일까? 별 특별할 것도 없는 이삭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부풀려져 읽히는 반면 입체적 인물인 리브가는 잘 언급되지도 않는다. 리브가가 이삭과 대립구도를 형성했기 때문일까? 그러고 보니 리브가는 대개 거짓으로 이삭을 속인 반면교사의 모델로 제시된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속임수를 시도하는 것은 이삭과 에서쪽이다. 철저한 가부장 사회에서 리브가가 족장인 이삭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설 수도 없다 (리브가가 타일러서 될 일 같았으면 이삭은 애초에 에서를 가만히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성서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그런 것처럼 그녀에게도 합법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단이 선택지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받은 신탁에 의지해 가부장제의 합법적 선을 넘고, 하나님의 신탁을 실현시킨다. 무엇이 합법이고 무엇이 불법인가? (상징세계 흔들기)
여성들에게 침묵과 순종만이 참된 가치인 것처럼 가르쳐온 교회가 감당하기에 리브가는 너무...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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