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ndleE 2021. 7. 31. 11:33

두 번째 반발(여성의 에클레시아에 대한)은 "역전된 성차별"인데 우리가 in Her name으로 여자들의 에클레시아로 모일 때면 남자들은 "(남자들과의) 상호성"에 호소한다. 그러나 이런 반대는 가부장제의 억압과 권력의 문제를 제대로 직면하지 않는다. 이 주장은 경솔하게 쉬운 은혜를 들먹이고 성차별이라는 구조적 죄에 대해서는 립서비스로 갚으려 한다. 만약 중남미 아메리카의 가난한 자들이 하나의 민중으로 함께 모인다면 그것을 "역전된 제국주의"라고 부르고 아프리카인들과 아시아인들이 하나의 민중으로 모인다면 그것을 "역전된 식민주의"라고 부르겠는가? 물론 아니다. 우리가 다음의 것을 알기 때문이다. 착취당하고 억압받은 자들의 결속이 부유한 자들을 (역)착취하거나 백인 남성과 서구 국가들 위에 권력으로 군림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 그들의 결속은 경제적 문화적 생존을 위해 싸우는 억압받은 자들의 정치적 연대를 의미한다는 것. 그렇다면 어째서 남자들은 생존과 해방을 위해 싸우는 여성들의 연대가 그들을 위협한다고만 하는가(그래서 그만두라고)? 어째서 교역자들은 기독교 여성들이 기독교인이자 여자 사람으로서 우리의 영적 생존을 위해 함께 모이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지 못하는가? 우리가 함께 모이는 것은 남자들 위에 군림하고 그들에게 맞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에클레시아가 되기 위해서다. 여성들의 에클레시아가 되어 우리 자신의 영적 건강과 싸움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을 직접 결정하기 위해서다. 남성에 의한 여성의 영적 식민지화(영적 제국주의)가 남성성을 신성으로 내면화하는 것을 수반하기 때문에 만약 '상호성'이 실질적 가능성이 되려면, 남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에 대해서 뿐 아니라 여자들에 대한 그들의 영적, 종교적 지배를 내려 놓아야만 한다.

 

엘리자베스 쉬슬러 피오렌자, In Memory of Her, 347

 

드디어 351페이지에 달하는 피오렌자의 역작 In Memory of Her를 완독했다. 신약성서의 모든 책들과 초기 기독교 문헌들을 다루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에 압도되어 3분의 2 정도의 지점에서 아주 큰 위기가 찾아왔다. 그러나 더위와 피로와 게으름을 이기고 마침내 책의 뒷커버에 환하게 웃고 계신 피오렌자 선생님을 이전과는 다른 경의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의 초판이 1983년에 나왔던 것을 감안하면 그의 주장이 이제는 낡아 2021년의 사회적 페미니즘의 이슈와 교회의 페미니즘 이슈를 다루기에는 적합하지 않아야 정상인 것 같다. 꽤 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2021년 서울에서 이 책을 읽은 나는 그러나 이 책이 올해 나왔다 해도 믿을만큼 적실하다 느꼈다. 위에 인용한 "역전된 성차별"이란 또 얼마나 2021년 대한민국에서 익숙한 표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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