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신나(신학생 나부랭이)의 글

복음서의 상황성을 전제하는 해석

BundleE 2021. 8. 26. 13:33

루이스 마틴의 주장에 근거해 레이몬드 브라운이 주장한 요한공동체의 생성과 소멸의 역사는 너무 과하고, 바클레이가 지적한 mirror reading의 위험성은 수긍이 가지만, 복음서들은 보편 그리스도인들을 타깃 독자로 상정한다는 리처드 보컴의 주장도 어쩐지 허술하고 의심스럽다. Dieter Mtternacht & Anders Runesson의 책에서 발견한 논지...속이 시원하네.

"보컴의 주장 중 하나는 (서신서들의 저자들의 경우처럼 ) 복음서의 저자들이 만약 목전의 공동체를 위해서만 글을 썼다면 텍스트를 생산하는데 그렇게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리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편지와 복음서는 같은 장르가 아니다. 또 우리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쓰였다고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유일한 신약성서의 (서신)본문은 위명 서신들 뿐이다. 아다시피 바울의 진본서신들은 보통은 바울이 함께 하지 못하는 구체적인 공동체를 향해 써졌다. 복음서들의 전기적인 특성을 고려하면 복음서들이 더 큰 집단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복음서들의 주된 목적 중 하나가 공동체 예배(예배 공동체)에서 공적으로 낭독되는 것이었다면 어째서 저자가 다른 공동체 혹은 다른 지역을 염두에 두고 쓰면서 자기 자신의 공동체 상황이 제공하는 준거틀(frames of reference)은 활용하지 않았겠는가?

 

대부분의 비정경적 복음서에 대해서도 우리가 사복음서에 대해 말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보편적"이라 주장할 수 있지만, 그것들은 종파적 환경에서 발생되었다고 말해지는 것은 흥미롭지 않은가? 사복음서가 특정한 지역 상황의 틀을 통해 해석된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쓰였다는 구상은 복음서들을 초기 교회들에게 뿐 아니라 후대의 세대들에게도 보편적 권위를 가진다는 주장을 수월하게 한다. 이것이 복음서들이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이해되어왔던 방식이다. 그러나 사복음서에 대한 이런 이해가 저자들의 목적을 정확하게 반영하는가? 사복음서에 대한 이러한 이해가 그들의 해석을 탈상황화/탈맥락화하는 경향을 낳지는 않는가?

 

어떤 텍스트라도 자신의 독자를 의도된 독자나 그것을 처음 만나는 사람들로 제한할 수 없다. 신약 성서는 최소 2천년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그 본문이 매혹적이라는 것과 자신들의 삶과 관련된다는 것을 발견해 왔기에 연구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서들이 우리를 위해(서도) 쓰여졌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러한 보편성)은 사복음서가 구체적인 상황들에서 단단히 발딛고 구체적인 독자들을 향해 있을 때만 가능하다. 본문들의 상황성은 그 본문들의 상황을 넘어서는 해석의 방해물이 아니라 그러한 해석의 전제조건이다."

 

『Jesus, The New Testament, Christian Origins: Perspectives, Methods, Meanings』

, edited by Dieter Mtternacht & Anders Runesson, translated by Rebecca Runesson and Noah Runesson, Michigan: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21: 229-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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