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말하는 것은 여전히 참으로 불편한 일이다.
학문적 주제나 신학적 주제로 여자가 말하는 것은 여전히 참으로 불편한 일이다.(물론 나의 잘잘못을 지적하는 집안의 여자가 말하는 것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지만). 자고로 여자는 침묵을 금으로 여기며(닥치고 삼 년 귀닫고 삼 년이라 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까지 자애로운 표정으로 그녀가 배워야 할 것을 말해주는 남자의 입만 볼 것이지, 지가 알면 얼마나 안다고 소중한 공론의 시간을 차지하고 권리를 주장한다는 말인가...말세다. 참으로 말세다. 여자들의 발언은 나이가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지적할 것 투성이다. 입을 열어 말하는 족족 이게 틀렸고 저게 틀렸고 지적하고 가르쳐 주어야 하니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닌데...세상이 변했으니 말하지 말라고 입을 틀어막을 수도 없고 참...역시 성가시다. 반면 남자는 나이가 어리고 많고를 떠나 어찌 그리 옳은 말만을 하는지. 어리면 어린대로 성숙하면 성숙한대로 다 배울 것이 있고 당신이 나의 오류를 지적할 때면 나는 그제서야 용기를 내어서 내가 사실 잘 모르니 나의 말이 틀릴 수도 있다고 고백할 수 있다. 그러나 어찌 감히 여자가 내 말에 토를 단다는 말인가...그녀의 말은 헛점투성이고 어딘가 틀릴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또 잘 모르는 내가 나서서 따끔하게 교훈을 줄 밖에. 여자들의 입을 막을 수 있는 더 다양한 기술들이 개발되고 보급되고 습득되어야 할 것이다. 대놓고 할 수 없으니 더욱더 교묘하고 세련되게!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가 우리에게 매우 귀한 자료를 전해주고 모범이 되어 주신다. 그는 자고로 여자의 위치는 예수와 사도의 발치이며 왠만하면 침묵을 지켜야 하고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방식으로 물심양면 헌신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건 정말 중요한데 마음만으로 헌신하는 것은 참된 제자도가 아니다. 물질로 노동으로 헌신해야 한다. 누가행전의 예수님을 보라. 그는 목소리를 내는 여자들은 늘 부드러우면서도 따끔하게 대하셨다. 우리 역시 그 부드러움과 따끔함의 노련함으로 여자들을 입다물게 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누가행전의 저자 역시 재산 좀 기부하고 머리속에 든 것 좀 있다고 교회일에 남자일에 참견하는 시끄러운 여자들 때문에 속 좀 썩으셨던 것 같아. 천국에서 만나면 소주 한 잔 마시며 얼마나 고생하셨나고 나도 당해봐서 안다며 등 한번 쓸어드려야겠어.
이렇게 수천년 전의 저자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공감하다니 세상은 참 변한 것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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