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ndleE 2021. 12. 9. 10:37

"학자의 정체성은 그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그가 누가 아닌가에 의해 더 결정적으로 규정된다. 그가 읽는 것이 아니라 읽지 않는 것,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용하지 않는 것, 그가 비판하는 것, 거리를 두는 것, 혹은 혐오하거나 경멸하는 것으로서 선택되어 배제된 것들이 바로 그의 학문적 부정자본인 것이다. 학생들이 성장해가는 과정 역시 부정성의 실천방식을 체화해가는 것과 동시적이다. 어떤 분과, 어떤 학파, 어떤 저자, 어떤 방법을 ‘부정’해야 하는지, 누구를 언급하지 ‘않아야’ 하는지, 어떤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지, 어떤 방법을 시도하지 ‘않아야’ 하는지를 그들이 알게 될 때, 그 앎이 감각적으로 체화될 때 비로서 전문연구자가 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학문자본의 형성과정에서 수행되는 구별짓기는 이처럼 ‘않음’과 ‘모름’과 ‘못함'의 축적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부정된 것은 단지 '없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의 형식 그 자체로 행위자에 의해 강하게 의미부여 되어 작동하는 힘이다. 그 논리와 맥락을 모르는 사람에게 부정자본은 보이지도 감지되지도 않지만, 동일한 내기물을 놓고 경쟁하는 자들에게는 부정자본 만큼 적나라하게 차별적이고 웅변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것 또한 드물다. 문화적 취향이나 학문적 실천의 영역에서는 소유된 것보다 삭제된 것, 괄호에 묶인 것, 방법적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버려진 것이 더 강력한 자원으로 작용한다."

김홍중, ‘부정자본론: 사회적인 것과 상징적인 것’, 『한국사회학』 51(3), 2017,
1-35: 23-24

여러 생각이 드는 단락이다. 
학문자본의 형성과 체화가 내가 누가 아닌가에 의해 규정된다는 말, 공감이 간다. 관심있는 주제의 논문들을 찾아놓고 이 논문을 읽을 것인지, 어느 정도의 무게를 부여할 것인지를 결정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참고문헌'을 훑어보는 것이다. 이제 나는 어렴풋이나마 어떤 저자의 책이 인용되면 안되는지 아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런 저자들의 책은 읽지 않고 당연히 인용하지도 않는다. 만약 인용할 경우 그건 비판할 때 뿐이다. 그러나 비판도 신중해야 한다. 그냥 절대 언급해서는 안되는 저작들이 있다. 이렇게 혐오하거나 경멸하는 것으로 선택되어 배제된 것들이 내 학문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21세기 페미니즘 성서해석의 과제를 논한 글에서, 성서학분야 전반에서 여성학자들의 저작이 거의 인용되지 않는 것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아마도 에스더 푹스였던 것 같음). 학계의 상징자본, 학문자본의 남성 독점이 여성의 배제를 동반하고 있다는 사실은 일반인에게는 종종 은폐되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김홍중이 말하는 것처럼 "동일한 내기물을 놓고 경쟁하는 사람에게 부정자본 만큼 적나라하게 차별적이고 웅변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것 또한 드물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촘촘한 시스템( 남성중심적인 교수사회, 학문적 성취의 평가 기준, 학술지 등재 그리고 출판시스템 등)이 아주 잘 작동 중이고 이러한 학문의 구조에 비판을 가하는 학자 개인 마저도 여성 학자의 성과물을 언급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 구조에 공모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려면 반대쪽으로 기울어야 한다는데(그람시가 그랬다던가) 남성중심적 학문 기준에 부합해야 학위를 받을 수 있는 신학 병아리에게 그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아주 먼 미래처럼 들린다. 

한국 신학 출판계의 학문적 정체성도 그들이 출판하지 않은 것들, 출판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출판사가 무엇을 출판할지 무엇을 출판하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정당한 일이지만, 그래서 되도록 다양한 색깔의 출판사가 있었으면 좋겠고 가능한 한 각 출판사들이 분명한 정체성을 드러냈으면 좋겠다. 이런 저런 책들을 구색맞춰 찍어내기 보다는 각자의 영역을 깊이 공부하고 어떤 책을 출판해야 하는지 또 출판하지 말하야 하는지의 신중한 선택을 통해 그 출판사의 학문적 정체성을 또렷하고 우아하게 드러내 줄 학문적 깊이를 갖춘 전문 편집인이 있다면 참으로 멋진 일일 것이다. 이 중 페미니즘 성서해석과 여성 신학 일반에 해당하는 학계의 성과를 발빠르게 발굴하고 소개하는 출판사도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출판사가 있다면 페미니즘 신학의 저변이 지금보다는 훨씬 더 확장되고 이 주제를 연구하려는 학생들도 늘어나지 않을까? 왜 이 주제를 연구하는 학생들이 늘어나야 하는가에 대해 묻는다면, 이토록 격화되는 젠더갈등의 사회에 신학이 아무런  성찰을 내놓지 못하는 것은 신학의 책임과 의무의 방기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남.녀 문제야 말로 가장 실존적이고 신학적인 문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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