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신나(신학생 나부랭이)의 글
위험은 흘러서 하청에 고인다.
BundleE
2021. 12. 25. 16:12
"누가 죽어도 바뀌지 않는 게 있다면, 그 죽음이 실은 무겁지 않다는 뜻이다. 그 죽음들에 부아가 치미는 인간의 수가 적다는 의미다. 그게 조직이든 사회든. 그럼에도 각자의 위치에서 발버둥치는 사람들을 안다.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거의 별세계라고 불러야 할 노동시장의 격차는 급기야 생존 확률을 갈랐다. 영세 사업장의 안전관리에 관해 이 나라는 각자도생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시안화수소 사고가 난 공장에 찾아갔다가 사장과 마주쳤다. 내가 집요하게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던 그의 얼굴은 몹시 피곤해 보였다. 그의 아내는 나에게 버럭 화를 내며 공장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는 그 뒤를 쫓아 들어가지 못했다. 정말로 죽을까봐 무서워서 작업 현장까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던 거다. 앞서 KBS 기자들은 마스크를 쓰고 방진복을 입은 채 공장 안을 취재해 보도했다. 마스크와 방진복을 구하지 못한 나는 그곳에 들어갈 수 없었다. 안전지대에 있는 나 같은 사람이 코앞에 가서도 차마 발들이지 못하는 일터에서, 그날도 누군가는 일을 하고 있었다. 직원 수 6명의 작은 업체였다. 그렇게 위험은 흘러서 하청에 고인다."
전혜원,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서해문집, 2021, 242

프롤로그<노동이 신성하다고요?>
1. 종속적 자영업자의 시대-프랜차이즈 가맹점주는 진짜 사장님일까?
2. 고용 없는 노동 - 플랫폼 일자리와 진화하는 노동법
3. 기술이 산업을 대체할 때 - 혁신은 어떻게 약탈이 되는가
4. 기술이 인간을 대체할 때 - 사라지는 직업과 사라지지 않을 권리
5. 로켓배송의 빛과 어둠 I - '물류 혁명'의 두 얼굴
6. 로켓배송의 빛과 어둠 II - 떠오르는 기업의 추락하는 노동
7. 들어갈 자격 vs. 일할 자격 - 공정은 어떻게 차별이 되는가
8. 일터에서 죽지 않을 권리 - 우리는 왜 날마다 명복을 비는가
9. 한국 노동의 딜레마 - 정년, 호봉제, 주휴수당
알고 싶지만 알지 못했던 것들과 알아야 하지만 알 의지가 없었던 것들,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잘못 알고 있었던 것들.
많은 것 배우고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노동을 둘러싼 이슈와 갈등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위험은 흘러서 하청에 고인다. 죽음의 이야기들이 쌓여간다. 그 이야기마저 흩어버리고 망각을 강요하는 사회이지만 그래도 '기억'으로 저항하는 이들도 있다. 그 기억으로 세상을 바꾸어 가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에게는 그런 노력이 더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여전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여기 우리들의 신학 팟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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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티 : podty.me/cast/194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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