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라 마리아는 창녀가 아닐 개연성이 높다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가 아닐 개연성이 높다. 어느 복음서에서도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수난의 자리를 지켰고, 매장을 지켜보았으며, 빈무덤의 첫증인이자 부활한 예수를 처음으로 만난 사도 중 사도다. 그러나 이런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는 우리 머리 속에 남아있지 않다. 해석의 역사 안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남성들에 의해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죄인 여자라고도 불리고, 창녀라고도 불리고 심지어 간음한 여인이었다고 회자된다(모두 본문이 지지하지 않는 주장이다). 그래서 우리는 막달라 마리아를 다른 제자들에 비해 우습게 생각하고, 여성들 또한 그녀를 자신의 롤모델로 삼지 못하게 되었다.
남성들이 기록과 해석에서 지은 죄가 깊고도 깊도다. 회개해야 할텐데.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기도가 하나님께 닿지 않을텐데.
그러나 한 편,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면 어떤가? 창녀는 사도 중 사도가 될 수 없는가?
창녀라고 불리는(물론 본문은 창녀라고 말하지 않지만) 향유부은 누가복음의 죄인 여자는 구원받았다. 예수는 여자에게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했다. 여자의 성적인 죄를 예수가 용서해주었고, 여자는 회개를 했으니 창녀로서의 삶을 정리하고 경건한 삶(경건한 삶에 대해서도 잔소리가 백 마디는 있지만 오늘은 참기로...)을 살았을 것이라는 설교, 무척 흔하다. 이 본문 때문인지 뭔지 기독교는 여자의 '성적인' 죄에 꽤나 골몰하고, 많은 여성들을 음녀, 창녀라는 식으로 낙인찍으며 괴롭히고 죽이고 가스라이팅 해왔다.성범죄는 죄다 남자가 가해자인데 왜 이렇게 여자들의 성만 죽자고 단속하는건지.
성을 사는 남자에게 성매매는 부도덕이다. 사회적으로 지탄받고 매장되어도 할 말이 없지. 그러나 성을 파는 여자에게 성매매는 윤리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생존의 문제이거나 더 비참하게는 사회적 착취의 문제다. 루이제 쇼트로프는 예수 공동체에서 여자의 회개가 자신의 '창녀됨'에서 돌아서는 것이 아니었을 가능성을 말했다. 예수는 여성의 성매매를 윤리나 도덕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창녀였기 때문에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그냥 복음서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 예를 들어 베드로처럼 여러 복합적 의미에서 '죄인'인 것이다. 이웃을 미워하기도 하고 도와주기도 하고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고 악한 마음을 품기도 하고 선한 행동을 하기도 하는 그냥 평범한 죄인말이다. 왜 성서 속 여자들의 죄는 죄다 '성적인' 것일 거라고 짐작하는지...여러분 여자도 온갖 다종다양한 죄를 지을 수 있는 복잡하고 다면적인 인간이랍니다.
<여성주의성서해석> 2023년 시즌2의 마지막 시간
막달라 마리아로 시작해 예수공동체의 '창녀'이야기를 했는데, 한국사회의 성매매 여성들을 연구했던 페미니즘 선생님과 현재 그들과 일하는 사회복지사께서 나의 얕은 인식과 이해를 교정하고 넓혀주셨다.
예수공동체는 성매매로 생계를 꾸려갔던 여성들에게 그들의 일을 정죄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동체 안에서 그들은 사회가 그들의 살갗 위에 깊이 박은 '창녀', '죄인'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얻었다. 그러나 여러가지 이유로 자신의 생계를 그만둘 수 없었던 많은 여성들은 창녀이면서 구원받은 자가 되었을 것이다. 삭개오도 세리이면서 구원받았다. 세리의 구원이 그가 어떤 세리가 되는지에 달려 있다면 창녀였던 여성들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마태처럼 세리를 그만두고 전업 제자가 될 수도, 삭개오처럼 세리라는 업을 버리지 않고 제자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창녀들도 마찬가지였을 거라는 말이다.
엘리자베스 쉬슬러 피오렌자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착취의 대상이자 피해자가 된 가난한 여성들이 해방되지 않는 한 우리 모두 해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너는 이 세상을 한발짝도 벗어날 수 없는 무력하고 쓸모없는 존재라는 거대한 가스라이팅과 사회적 낙인의 지옥에 갇혀 옴짝 달싹 못했던 여성들에게 예수는 그들이 귀한 존재라는 것,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려주고 가장 밑바닥 여성들을 해방했으며 그래서 모든 여성들을 해방했다. 예수 공동체는 그들을 받아들여 그들이 자신의 새로운 존재를 믿을 수있는 관계를 맺었다. 그래서 죄인으로 알려져있던 여자는 터무니 없이 값비싼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붓고 기쁨과 감사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던 것이다.
오늘의 기독교는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이같은 여성들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들에게 교회는 뭘까? 교회는 그들이 가보고 싶은 곳일까? 교회는 그들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제공하고 하나님이 자신을 바쳐 사랑하는 귀한 존재라는 것을 일깨우고 믿게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아무 생각이 없지. 대체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사는 건지, 무슨 짓을 하며 현재를 살고 미래로 걸어들어가는 건지 알 수 없는 밤이다.
◇
팟빵 :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69565
네이버 오디오클립 :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2453
iTunes : https://bit.ly/theoyws
'구독'과 '좋아요'는 언제나 좋아요!
#여우신 #여기우리들의신학 #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