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신나(신학생 나부랭이)의 글
경악과 기쁨을 ‘여성주의 성서해석’에서 경험한다
BundleE
2023. 8. 21. 21:52
“대가리 꽃밭”
맨 처음 떠오르는 단어가 이것이었다.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식적 자격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쩌다 보니 기독교 대중을 상대로 여성주의 성서해석이라는 것을 한지 어언 2년여. 작은 모임에서 열린 생각과 겸손한 태도를 가진 훌륭한 분들만 만나다 보니 세상은 살만한가 여기기 시작하고 높이 세웠던 가드가 느슨해지고 꼿꼿이 세웠던 허리도 흐느적 거리고 정신은 해이해지고 그랬네 내가. 그간 머리 속이 꽃밭이었네.
시작부터 한결같은 것은 이 자리를 통해 기독교 대중은 물론 한국 신학계에도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여성주의 성서해석의 연구 성과를 소개하는 것이다. 내 개인적 해석이 당연히 포함된다. 해석을 하지 않는 독자는 없으니까. 성향상, 성서해석에서 마구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는 못하며, 내가 배운 성서해석의 기본에 근거하여 나 스스로가 설득될 수 있는 해석을 추구하는 쪽이다.
나의 해석이 “페미니스트적”인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내가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가지고 본문을 만나며 나라는 독자와 만나 살아난 텍스트는 다른 이들에게는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내게 말을 건다는 것이다. 나는 그 목소리를 듣는다. 물론 텍스트도 나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이 다른 이야기를 혹자는 “편파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이 목소리를 “당파적”이라고 부른다. 나는 당파적 해석을 지향하며 하나님이 가난한 자의 하나님, 가난한 자의 편에 서시는 하나님이라는 해방신학의 당파성에 동의한다. 사실 어느 누구의 해석이 ‘당파적’이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의 신학이 혹은 성서해석이 ‘보편적’이라고 믿는 사람은 자신이 세상의 주류를 옹호하고 있음을 성찰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위선자일 뿐이다. ‘주류’는 ‘비주류’를 구분하고 배제해야만 비로소 존재 가능하다는 사실을 여전히 깨닫지 못하였으니 어리석고 ‘보편’이라는 그럴듯한 수사로 자신의 당파성을 위장하기에 위선적이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나는 스스로에게 ‘페미니스트’라는 레이블을 붙이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하다. 한번도 남들에게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말한 적이 없으며 페미니즘의 이론에 대해서도 무지한 쪽에 속한다. 그런데 생각하는 대로 말하다보니 어느새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인식되고 있다. 이 페미니스트라는 레이블이 어색하고 불편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터다. 우선 기독교와 한국 사회안에서 ‘페미니스트’라는 용어가 가지는 부정적 이미지가 가장 크고, 그래서 나를 ‘페미니스트’라고 꼬리붙인 사람들은 내게 페미니즘에 대한 해명을 요구한다. 참 난감하다. 나는 페미니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며 그저 여성주의적 성서해석에 격하게 공감하고 거기서 너무나 설득력 있는 목소리를 들었기에 그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은 사람일 뿐인데 어쩌다 나는 교회에 부담이 되고 기독교인들이 부담스러워하고 나 자신도 부담스러운 페미니스트가 되었을까? 이쯤되면 본격적으로 페미니즘 공부를 해야하나?
하지만 나는 헬라어와 히브리어 공부 시간을 가장 좋아하고 내 힘으로 히브리 성서와 기독교 성서를 읽을 때 전율을 느끼는 신학생이다. 헹엘의 <유대교와 헬레니즘>과 요세푸스의 저작을 함께 읽으며 독서의 기쁨을 누리며, 웨인 믹스, 캐롤린 오지엑, 데이비드 발치 같은 학자들의 사회사적 연구물을 보고는 나도 이런 연구를 해보고 싶다는 꿈에 부푸는 전형적인 신약학도다. (내 해석을 여성주의 성서해석이라 부를 수 있다면) 나의 여성주의 성서해석은 저기 별나라에서 온 이질적이고 얼토당토 안한 해석이 아니라 전형적인 신약학도가 ‘여성’이라는 안경을 통해서 성서를 본다는 점에서 조금 ‘독특한’ 해석일 뿐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성서는 ‘죽은’ 텍스트가 되어가고 있다. 교회를 다니지만 스스로 성서를 펼치지 않는 이들이 많으며, 그 안에서 어떤 감동도 영감도 발견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늘어간다. 성서학의 임무 중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이 성서를 ‘살아있는’ 텍스트로 만나게 다리를 놓는 것이다. 설교자라면 누구나 너무 익숙해서 죽은 은유가 되어버린 말씀을 새로운 은유로 읽고, 생동감있는 의미를 발견하며, 그리스도인의 삶에 말씀이 살아 움직이게 하는 해석을 찾아 헤맨다.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이며 ‘여성주의 성서해석’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래서 머리속이 꽃밭이었나? 놀라운 식물의 세계…뭐 이런 것처럼, 익숙한 꽃밭에서 한번도 알아채지 못한 식물과 놀라운 생명체를 발견하는 경악과 기쁨을, 나는 ‘여성주의 성서해석’에서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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