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신나(신학생 나부랭이)의 글

비극의 비밀: 운명 앞에 선 인간의 노래, 희랍 비극 읽기

BundleE 2020. 1. 22. 10:48

비극의 비밀: 운명 앞에 선 인간의 노래, 희랍 비극 읽기
강대진 지음, 문학동네, 2013

예루살렘과 아테네가 상관이 없는 것만큼이나 그리스 고전과 내가 무슨 상관인가... 라고 믿으며 오랜 세월을 꿋꿋이 잘 살아왔건만... 분명 신학책이라고 알고 읽는 책에서 자꾸 <안티고네>를 언급하는 것이다. 게다가 아...놔... 신학책의 저자가 “독자님, <안티고네>는 당연히 읽으셨죠?”...라고 전제하는 바람에...읽은 척... 했다. 그리고 어찌어찌 마지막 장까지 끝냈으나 이 찝찝함을 어찌해야 하누? 어이쿠... 내가 어쩌다 신학 공부를 하겠다고 덤벼서... 갈수록 태산이다. 

도서관의 그리스 고전 서가를 서성이다가 작품을 읽을 용기는 나지 않아 《비극의 비밀》이라는 그리스 고전 작품 해설로 보이는 책을 뽑아 들었다. 다루고 있는 여러 작품 중에,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확인하고 대출. 아이스퀼로스의 <아가멤논>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건 또... 재밌는거다! 아니 그리스 고전이 이렇게 흥미진진해도 되나?!! 이 책이 이토록 흥미로웠던 이유는 아마도 저자가 그리스 비극을 여성의 관점에서 읽으려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남성 인물 중심의 해석이 아니라 여성 인물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해석이 나를 위해 작품의 흥미를 끌어올려 준달까?  덧붙여 신약의 배경이 되는 그리스-로마 시대는 ‘명예와 수치’의 사회라고 배웠는데, 이 작품들을 보니 과연 ‘명예와 수치’가 죽고 사는 문제더라. 그리스 고전에서 반복되는 주제들과 용어들, 헬라어 단어들을 이해하면 신약의 문헌들을 그 시대의 눈으로 보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바로 작품으로 들어갔다면 이해하지 못했을 그리스 희곡의 전형적 형식들과 전개, 번역본으로는 알아보기 어려운 운율의 유지/변화와 그것의 의미 등을 알려주니 큰 도움이 되었다. 나 혼자서 그런 세밀한 것들을 발견하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을 거다. 부분 부분 어떤 헬라어가 쓰였는지를 일러주는 것도 나에게는 신나는 일이었는데 대부분의 (몇 개 안되는) 단어들이 아는 것들이어서 그랬다. (어... 뭐지... 그리스 비극을 헬라어로 읽을 수 있게 되는 건가...?!! 물론 단어의 벽이 높아 복음서도 버벅대고 있는 현실이긴 하지만...헬라어 선생님이 그러셨지. 헬라어를 배우면 100세 인생 죽을 때까지 심심할 일은 없다고...)

여성 등장인물들: 
자신의 남편 아가멤논을 도끼로 죽인 클뤼타임네스트라. 
그녀는 아가멤논이 자신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자 복수를 다짐하고, 트로이전쟁에서 돌아온 아가멤논을 죽인다. 이에 대해 그들의 둘째 딸인 엘렉트라가 어머니에게 원한을 품는다. 여튼... 나는 퍼뜩 입다의 딸이 생각났다. 아버지의 맹세로 인해 제물이 된 딸. 입다의 부인은 입다에게 어떤 복수를 했을까?

나는 안티고네 때문에 이 책을 빌렸지만, 그렇게 큰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다. 직접 소포클레스를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와 <박코스의 여신도들>은 정말이지 반드시 작품을 읽어보려 한다. 여성 등장인물들이 한마디로 ‘쩐다’. 이런 박력 터지는 여성들의 원형이 있는데 어째서 몇 안 되는 남성 주인공들만 신화화되고 원형으로 제시되었던 것일까? 그 수천년 세월 동안?

이 책은 나처럼 고전에 관심은 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 독자들이 감히 그리스 비극에 도전해보고 싶을 만큼 충분한 흥미를 유발하고 동기를 제공한다. 고전을 엄숙하고 진지하게만 읽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저자의 글쓰기가 내게는 적중한 듯싶다. 

저자의 말 중 ‘글쓰기와 강의’에 대해 공감한 부분:
“내게 마감이 힘들었던 것은 거의 언제나 원고 보낼 기한이 닥칠 때까지 새로운 자료를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읽고 쓰자, 조금만 더’... 내가 이렇게 막판까지 자료(대개는 뛰어난 선배 학자들의 논문)를 읽어댄 이유는, 글을 쓸 새로운 동력을 얻기 위해서였다. 사실 나도 대학생과 일반인을 상대로 비극 강의를 해온 지 15년 정도는 되었기 때문에 대개의 작품은 별다른 준비 없이도 그럭저럭 강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전에 했던 말의 되풀이인지라 나 자신은 흥이 나지 않아, 강의도 힘들고 듣는 사람도 재미가 없을 것 같다. 말하는 사람이 신이 나서 얘기해야 듣는 사람도 재미가 있는 법이다. 열정은 전염되기 때문이다.” - 375쪽

◇ 여기 우리들의 신학 팟캐스트

팟빵 : podbbang.com/ch/1769565

네이버 오디오클립 : audioclip.naver.com/channels/2453

팟티 : podty.me/cast/194201

iTunes : bit.ly/theoy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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