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신나(신학생 나부랭이)의 글

바울과 선물 - 바울의 은혜 해석: 극대화 패턴의 변천 (8)~(9)

BundleE 2020. 3. 12. 13:57

«바울과 선물» - <1부 제3장 바울의 은혜 해석: 극대화 패턴의 변천> (8)

 

5.3.에른스트 케제만

 

루터 전통안에서 불트만의 영향을 받은 케제만도 은혜의 비상응성을 바울신학의 특징으로 삼지만 구원을 "자기이해"의 가능성으로 보는 불트만의 경향은 거부한다. 그는 독일 개신교 사상의 개인화되고 보수적인 영성과 내내 긴장관계에 있었으며, 바울논쟁을 바르트적 용어인 “종교” 혹은 “경건”(이 용어를 더 선호)으로 표현하면서 독일의 보수적 중산층 기독교에 비판을 가했다.

 

불트만의 실존신학과의 대화 가운데 자신의 신학을 형성하고 발전시킨 케제만은 바울신학의 인간학적 깊이를 인정하지만, 불트만의 실존주의적 해석에 내재된 개인주의적 성향은 비판했고, 구원의 결과로 야기되는 것은 자기이해의 변화가 아니라 주되심의 변화라는 주장을 전개했다. 바울의 “몸(σομα)” 의 해석에 있어서도 케제만은 몸을 개인이 자기 자신과 갖는 관계(불트만)로 여기지 않고, 거대한 물리적, 사회적 환경에 뿌리내린 인간 자아를 보여주는, 즉 주권적 창조자이신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세상의 한 부분으로 몸을 이해한다.

 

1940년대 후반부터 케제만은 (아마도 사해 사본의 자극을 받아) 바울 사상의 종교-역사적 배경을 영지주의가 아닌 유대교 묵시사상으로 간주하고 “묵시 사상이 기독교 신학의 어머니”라고 선언한다. 묵시적 믿음의 내용은 예수께서 우주를 위협하고 속박하는 능력들을 물리치고 왕좌에 앉으시는 것으로 온 우주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선포하는 것이다. 묵시 문학의 지평은 언약 공동체를 넘어 우주 전체로 확장되며, 창조주 하나님은 이 우주 전체에 신실하게 역사하신다. 케제만은 교회 안에 갇혀있던 구원의 지평을 온 세상과 우주로 확장하고 있으며, 이런 이해 속에서 이스라엘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바울의 관심(롬9-11)을 차지하는 구원사적 읽기를 (조심스럽게) 포용할 수 있었다.

 

은혜에 대한 케제만의 해석은 묵시 구조 안에서 이해될 수 있는데, 그는 하나님의 의를 “선물”로 보는 해석이 하나님의 의를 “권능”으로 보는 해석을 통해 보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언가를 주실 때 하나님은 구원을 일으키는 권능, 곧 피조물에 대한 창조자로서의 권리를 나타내는 자신의 “의”와 함께 무대에 오르시며 따라서 은혜는 능력(은혜의 권능 혹은 통치)으로도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케제만에게 은혜는 수혜자에게 건네지고 그들의 소유가 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수여자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며 선물과 함께 권능과 권위의 주님도 오신다. 그 결과 선물 자체가 순종으로의 부르심인 동시에 섬김의 능력이 된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을 경험하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그분의 능력 곧 피조물 전체에 대한 창조주의 주권적 권리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케제만은 은혜가 “값싼 은혜”(하나님이 답례에 대한 아무런 기대 없이 주신다:루터)로 전락하는 것과 하나님을 새로운 자기이해의 원천으로 환원시키는 것(실존신학:불트만)에 반대하면서 하나님의 의가 현재 작용하고 있는 구원의 능력이며 은혜와 (하나님의) 요청의 지속적 원천임을 강조한다.

 

바울이 맞서 싸운 율법주의에 대해 케제만은 하나님의 약속을 자신들의 특권으로 바꾸고 하나님의 계명을 자기 성화의 도구로 변질시킨 이른바 “경건한” 사람들의 공동체를 상징한다고 보았다. 케제만에게 은혜는 결코 인간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는 하나님의 임재와 권능의 구현이며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유일한 수여자이신 하나님을 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행위자agent의 문제에 있어 케제만은 우리 삶을 결정하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도 말했지만 은혜를 전유하는 인간적 결단에 대해서도 말한다. 하나님의 선물이 먼저 주어지고 능력을 부여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능력이 믿는 자의 행위를 대체하거나 대신하거나 신적 행위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책임있는 순종으로 부르심 받는다. 케제만에게 이런 믿는 자의 행위는 성과 속을 구분하는 종교적 경계선을 넘어 하나님이 개선시키고 있는 세상 전체를 관통해서 사회적, 정치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 루터 전통이 대체로 비상응적인 은혜의 작용을 개인적인 삶 속에서 찾았던 반면, 케제만은 비상응적인 은혜의 사회적, 정치적 의의를 끌어내서 미국과 독일의 정치적 의식이 있는 새로운 세대에게 바울신학을 활성화시켰다.

 

케제만이 칭의를 무시하는 시도들(스텐달과 같은)을 거부했던 이유는 단지 루터 전통에 대한 충성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의 바울 해석 때문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가 완전히 비상응적인 형태로, 그래서 기존 체제를 전복시키는 사회적 형태로 작용할 수 있음이 “경건치 않은 자의 칭의”라는 바울의 주제에서 명백히 표현된다고 이해했다.

 

 

«바울과 선물» - <1부 제3장 바울의 은혜 해석: 극대화 패턴의 변천> (9)

 

5.3. J. 루이스 마틴

 

마틴은 그리스도의 계시가 “저 위로부터” 세상 안으로 침투하여 인간의 “종교”가 만들어낸 망상과 차별을 파괴한다고 주장한다는 면에서 바르트의 전통을 계승한다. 그리고 바울을 ‘묵시적’신학자로 보면서,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바울 해석에 반발하여 그리스도-사건과 그 사건의 여파를 인간적 “가능성”의 개시(불트만)가 아닌 하나님의 권능의 행사로 강조한다는 면에서 케제만의 전통에 서있다.

 

마틴은 갈라디아서에서 바울 특유의 우주론적 묵시 신학을 발견했다. 유대 묵시사상과 비교했을 때, 바울의 묵시사상에서 새로운 것은 (비밀의 드러남이 아니라) 그리스도-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우주에 침투하신 일이다. 현재 죄와 사망같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권세들에 의해 속박되어 있는 우주에서 그리스도는 인간을 그런 권세들로부터 해방시키시고 이제 믿는 자들은 그 권세들과 맞서 영과 육체 사이의 새로운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마틴에게 묵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유효하지 않은 구분 즉 실재의 전통적(종교적) 구분을 제거할 수 있는 힘(갈3:28)을 가지고 있으며, 그는 이 현상이 인식적 차원에서 실재에 대한 완전한 재형성을 수반한다고 주장한다. 마틴은 그리스도-사건을 이스라엘 역사로부터 출발하는 맥락 만들기의 궤적 위에 놓으려는 “구원의 선형성”에 반대하는데, 이는 아마도 그가 그리스도-사건을 점진적(선형적) 구원의 역사로 읽기 보다는, 하나님의 침투와 구원 사건에 있어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강조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인간적 행위 주체의 능력에 대해 부정적이며, 바울의 πίστις Χριστοῦ에서 Χριστοῦ 가 주격 소유격으로 “그리스도 자신이 소유하시는 믿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하한다. 만약 이 소유격이 목적격 용법(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해석될 경우 바울의 선택지는 율법의 행위 혹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행위)라는 두 개의 인간적 대안만을 제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격 소유격으로 해석할 경우 인간의 행위와 하나님의 행위라는 전혀 대조적인 선택지가 도출된다. 마틴에게 인간의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자극 받고 점화되는 것일 뿐 전혀 독립적이거나 자율적이지 않다.

 

마틴의 은혜는 아무런 전제 없이 아무런 조건 없이 주어진다는 비상응적 측면이 극대화되며, 은혜의 우선성과 은혜가 믿는 자들의 행위에 미치는 지속적인 유효성이 강조된다(아우구스티누스와 비슷한 의견). 인간 주체의 능력에 대해 부정적임에도 불구하고 마틴은 이런 강조가 믿는 자들을 꼭두각시로 만드는 것은 아님을 강조하지만 하나님의 행위(divine agent)와 인간적 행위(human agent)사이의 관계는 불분명하다. 사실 마틴의 주된 관심사는 인간 행위자의 자율성을 부정하는 것인데, 이는 그가 처해 있던 상황에 근거한다. 마틴은 1960년대 이후 미국 교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해방운동을 지지했지만 교회의 사회적 정치적 행동이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시는 행동에서 분리되어 윤리가 중심이 되고 구원에 있어 인간의 행위를 의존하게 되는 것을 크게 경계했다. 그래서 해방을 가져오는 비전으로 은혜의 우선성과 유효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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