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신나(신학생 나부랭이)의 글

고독한 연재를 마치며

BundleE 2020. 4. 14. 13:42

알랭바디우를 마지막으로 고독한 연재를 마친다..^^;;

바울의 서신과 그의 신학이 기독교를 넘어 철학(인문학)에도 영감을 주고 있다. 난 알랭바디우가 하는 이야기를 다 알아듣지는 못했다. 아마도 알랭바디우는 한 공동체에 다양한 인종과 문화와 종교와 계급과 성적 정체성의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건강한 방식으로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새로운 현실에서 함께 더 나은 방향으로 걸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방법을 바울에게서 찾고 있는 듯 하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초현실적인 현실.. 그에 대한 놀라움이 매일 갱신되는 요즘이다. 강대국이라고 문명국이라고 자임하던 유럽과 미국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습격을 받고 허둥지둥 우왕좌왕 하는 것을 보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과 한국을 열등한 국가 취급하던 그들의 자신만만함에 헛웃음이 나올지경이다. 다들 자기 살겠다고 문 밖에 내어 놓았던 꼬리를 감아들이듯 문을 걸어 잠근다. 중산층의 삶은 어떻게든 꾸려지는 것 같은데, 코로나라는 공포가 휩쓸고 있는 이 마당에 가장 극한의 사지로 몰리는 이들은 돈 없는 사람들, 시민권 없는 사람들, 국적 없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어딘가 가장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다들 살겠다고 문을 걸어잠그는 현실을 비웃기라도 하듯 코로나 사태는 우리가 누군가를 배제한 채로 그러니까 누군가는 병에 걸리든 말든 신경을 끈 채로 살아갈 수는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건강해야 우리가 건강하다. 우리가 특별히 더 선하거나 관대한 사람들이라 그들을 돌보는 것이 아니다. 실은 우리의 생존이 그들의 그것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함께 사는 방법을 절박하게 모색해야 한다. 바울신학은 기독교는 어떤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을까? 성서는 우리가 지금 직면하는 때로는 난생 처음 맞닥뜨리는 문제들에 대해 조언이 될 지혜로운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않고 내가 믿는대로 또 그것을 고착화하는 방식으로 진부한 말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는 것, 그런 말들을 아무런 비판없이 듣고 옮기는 것...이런 것들이 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렌트가 아이히만에게서 발견했던 것.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평범하다. 그들은 심지어 그들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으며 악을 행했다.

 

코로나와 신천지가 연결되면서, 코로나와 예배가 연결되면서 어느 때보다도 종교에 관해 또 기독교에 관해 많은 담론들이 형성되는 것 같다. 난 아직 배움이 부족해 담론 형성의 주체자는 되지 못하지만, 되도록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대화에 참여하고 토론하고 의견을 나눈다면 좋겠다. 우리가 멈추어 서서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의미있는 방향전환을 일궈낼 수 있는 기회를 그냥 날려보내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니까.

 

여기 우리들의 신학 팟캐스트

팟빵 : podbbang.com/ch/1769565

네이버 오디오클립 : audioclip.naver.com/channels/2453

팟티 : podty.me/cast/194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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