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그리고 유대교, 할례
"20세기 중반 발아된 ‘바울에 대한 새관점’은 바울과 유대교간의 관계를 깊이 파고들었다. 패러다임은 ‘유대교에 맞선 바울’에서 ‘바울 그리고 유대교’로 전환되었다. 이 관점은 이제 ‘바울 그리고 유대교’에서 ‘유대교 안의 바울’로 전환되고 있는 중이다. ‘다시 상상하기 re-imagining’라는 벅찬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바울의 서신들은 모두 다시 번역되어야(retranslated) 한다. 단어 책들(the word books)은 모두 다르게 제시되어야 한다. 주석들은 모두 다시 쓰여져야 한다."
Paula Fredriksen, “How Later contexts affect pauline context”, ⟪Jews and Christians in the First and Second Centuries: How to Write their History⟫, ed. Peter J. Tomson and Joshua Schwartz, Brill: Leiden, Boston, p.51
Fredriksen의 충격적(나에게는)이고 신선한 여러 주장들 중 하나만 소개하자면,
바울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절대로 할례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왜? 이방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신들의 제의에 참여하지 않고 오직 유대인의 신만을 섬기는 pagans의 정체가 바울에게는 마지막 때가 임박했다는 징조/증거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할례를 받는다면 그들은 더 이상 pagans이 아니라 Jews가 된다. 예언되고 약속된 종말에는 pagans가 Jews와 함께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했다. 바울에게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아 Jews(개종자)가 되어야 한다는 ‘교사들’의 주장은 하나님의 종말 계획을 망치는 것이었다.
공로와 은혜의 frame에서 벗어나 ‘할례논쟁’에 대한 전혀 다른 지평을 열어 젖힌다. 당연한 것이라 전제되어 있던 바울의 세계가 저자에 의해 도전될 때 귀가 쫑긋 서게 흥미롭고, 논리의 전개를 따라가는 동안 머리가 싸하게 짜릿하다.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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