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친구들의 글

[박씨부인] 성인이 된 세계의 필요는?

BundleE 2020. 8. 6. 18:46

*내가 무척 좋아하고 존경하는 ‘박씨부인’이 정의의느티나무숲 교회 묵상집을 위해 쓴 글. 너무 좋아서 마구 졸라 여우신 페북에 전문 싣는 것을 허락받았습니다. ‘여기 우리들의 신학’ 이 명실상부 ‘우리들’의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실현시켜 주신 박씨부인께 참말로 감사드립니다! (신나)

성인이 된 세계의 필요는?

#아이들 한 아이를 성인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마을의 기능을 잃어버린 사회에서는 주양육자의 존재 전체를 오롯이 바쳐야 한다.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고 기저귀 가는 일은 세심한 관찰과 예리한 판단을 요하는 일이어서 하루 종일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정신노동이자 몸마저 고된 육체노동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기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간다. 아이가 쑥쑥 자라기도 하거니와, 육아가 힘들긴 해도 그것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을 만한 큰 기쁨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자라나는 아이에게 (아파트와 학교와 학원만 있고) 마을이 없는 사회에서 오히려 어려운 일은, 가정이라는 작은 울타리 안에서 치열하게 하나님을 인식하며 개별성을 가진 아이들을 말로 가르치고 삶으로 훈육하며 마음을 담아 소통하는 것이다. 어느덧 그렇게 20여 년이 지나고 훌쩍 성인이 된 아이들, 내 뒤에 있던 아이들이 이제 내 앞에 있다. 그리고 그들은 마을로 나아간다. 각자 자기 자리를 찾고 뿌리내리고 성장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빚어가는 과정에서, 변화된 그들의 필요는 무엇일까?

#나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해서, 하나님나라가 무엇인지 살짝 엿보았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성인(聖人)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또한 아이의 성장과정과 비슷해서 똥오줌 못 가릴 때가 있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징징대기도 하고, 기도응답 여부에 따라 울다 웃다 하며, 작은 성취에 우쭐대기도, 사뭇 세상의 이치를 다 아는 양 착각하기도, 세베데의 두 아들처럼 엉뚱한 야망을 품기도 하며, 베드로처럼 “이불킥”할 만한 짓으로 좌절과 고통 속에 신음하기도 하면서 비로소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한다. 거듭나고 30년, 그동안 한 사람의 거듭남과 성장을 위해 자기 존재를 바친 분이 계시고, 어리고 유별난 내게 마을이 되어준 사람들이 있다. 이제 갓 서른 살 성인(成人)이 된 나 역시 나의 아이들처럼, 다시 마을로 나아간다. 마을 안 나의 자리는 어디일까?

#세계 나치 치하에서 히틀러 암살을 도모하다가 체포된 본회퍼는 옥중에서 그의 절친한 친구 베트게와 상당한 분량의 편지를 주고받았는데(이 편지는 본회퍼가 사형을 당한 후 베트게에 의해 <저항과 복종>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본회퍼는 안타깝게도 히틀러가 자살하기 불과 2주 전에 사형당했다.) 그는 편지에서 인간이 더 이상 신의 도움을 받지 않고 그 자율성으로 모든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현대세계를 일컬어 “성년 된 세계”라 한다. 십자가에 달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성년 된 세계를 해방하고 포용하고 축복하시며, 인간이 신에게 받은 자율성을 책임 있게, 겸손하게 사용하도록 요청하신다. 교회는 자기정체성을 확고히 지키되, 비종교적 세계에서 말이 아니라 삶의 모범으로, 타자를 위해 과감한 모험을 감행하도록 부름 받았다. (그동안 교회는 얼마나 많은, 책임 없는 공허한 말들을 쏟아 놓았는가?) 교회는 자기 생존이 아니라 타자를 지키는 데 존재 이유가 있다. (교회는 그동안 자기 생존을 지키기 위해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약자를 억압해 왔는가?) 그의 삶과 신학으로 나치정권에 끝까지 저항한 본회퍼는 진정 그리스도를 따라, 타자를 위해 존재를 바친 삶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오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누구인가?”

#세계의 필요: 함께 나누는 빵 
내가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서 고군분투하며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동안, 세계도 몰라보게 성장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강자에게만 유리한, 부조리한 상황을 맞닥뜨릴 때 이제 사람들은 힘없이 당하기만 하거나 감정싸움, 몸싸움으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합리적 이성과 언어로 싸우고 약자들이 함께 연대함으로써 높은 산을 무너뜨리고 골짜기를 메운다. 지형은 매일 조금씩 변하고 있다. 

정의의느티나무숲 교회는 내가 오랫동안 꿈꾸던, 새로 만난 마을이다. 어쩌다 우연히 성찬빵을 굽게 된 나는 그 상징적 의미를 다시금 곱씹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어 먹음으로써 그를 내 안에 들이고 우리 안에 살게 하는 것, 제각각 다른 결을 가진 우리가 예수를 먹고 다함께 하나의 예수가 되어 그의 정신을 잇고 그의 삶을 살아내는 것, 그리하여 사랑과 정의와 평화의 나라를 꿈꾸고 이루어가는 것 말이다.
그렇게 1년 이상 함께 예수를 먹은 우리는 이제 또다른 차원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성찬 대신 시작한, 세상을 위한 중보기도는 우리에게 뜻밖의 성찬이 된다. 세상의 모든 타자를 위해 자기 존재를 바치신 그리스도, 그가 연약한 자들을 위해 연약한 모습으로 머물러 계신 곳의 이야기를 나누어 먹고 그들을 위해 함께 기도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들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그들 곁에 서서, 그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그들과 한 몸을 이루어, 평탄한 지형을 만들어 가시는 그분의 일에 참여하게 된다. 

이 시기가 지나면 우리는 분명, 더 구체적인 성찬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성년이 된 세상 대한민국, 여기 느티나무숲에, 그리스도는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와 빵을 나눌 것이며, 누구의 마을이 되어줄 것인가?

-박씨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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