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우리들의 신학

파라클레토스 본문

글/신나(신학생 나부랭이)의 글

파라클레토스

BundleE 2020. 11. 24. 18:32

32ἰδοὺ ἔρχεται ὥρα καὶ ἐλήλυθεν

ἵνα σκορπισθῆτε ἕκαστος εἰς τὰ ἴδια κἀμὲ μόνον ἀφῆτε·

καὶ οὐκ εἰμὶ μόνος, ὅτι ὁ πατὴρ μετ’ ἐμοῦ ἐστιν.

33Ταῦτα λελάληκα ὑμῖν ἵνα

ἐν ἐμοὶ εἰρήνην ἔχητε.

ἐν τῷ κόσμῳ θλῖψιν ἔχετε·

ἀλλὰ θαρσεῖτε, ἐγὼ νενίκηκα τὸν κόσμον. (요한복음 16장)

 

파라클레토스에 대한 발제를 준비 중이다. 건조하기 짝이 없는 논문과 책들을 재미나게 읽는다. 요한복음 이전 문헌들에서의 파라클레토스 용례에 대해 배우고 patriarchy 사회, patron-client의 관계로 구축된 문화에서 파라클레토스의 의미를 음미한다. 무슨 의미인지 도통 알 수 없는 '보혜사'라는 말로 번역된 파라클레토스는 보통 영어로는 advocate으로 번역된다. 아마도 공관복음에 묘사되는 마지막 때 법정에서 고발당하는 신자들을 변호하는 영의 역할을 파라클레토스의 기원/맹아(?)으로 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Parakletos의 성경 밖 용례는 그것이 법정에서 공식적 역할을 맡은 변호인이라기 보다는 유력한 patron의 자원/지지를 얻어내야 하는 client를 도와 그 둘을 연결시켜 client가 필요한 것을 얻도록 해주기 위해 법 밖에서 활동하는 broker에 가깝다고 한다.

 

돌고 돌아 뒤늦게 성서 본문을 마주하고 공을 들여 한 자 한 자 읽어나간다.(순서가 바뀌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왜 이러는지...) 헬라어 본문은 단어 하나 하나를 새롭게 인식하게 하고 곱씹게 한다. 요한복음 저자가 천착하고 씨름하고 있는 주제가 무엇인지 알 것만 같다. 이천년의 시간을 건너 이 글을 쓰고 있는 그 사람을 상상하게 된다. 헬라어 성경을 읽으면서 가슴이 울렁이게 되다니.

 

시간이, 그 시간이 온다. 그 시간은 자꾸 온다. ἔρχεται ὥρα가 반복된다. 그 시간은 예수가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는 시간. 그가 영광받는 시간. 그가 홀로 남겨지는 시간. 그가 십자가에 올리우는 시간. 제자들이 세상에 홀로 남겨지는 시간. 그들이 울며 절망하는 시간. 세상이 승리로 기뻐하는 시간. 믿는 자들의 눈을 뜨게 하고, 인식을 깨우고, 삶을 변혁하는 시간. 모든 고통을 잊게 되는 환희의 시간. 그 모든 것을 가능케하는 진리의 영, 파라클레토스가 오는 시간.

 

시간이 오고 있고, 이미 왔다.

너희가 모두 흩어지고 너희는 나를 홀로 남겨둘 것이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가 나와 함께 계신다.

이 모든 것들을 내가 너희에게 말한 것은

내 안에서 너희가 에이레네를 가지게 하려 함이다.

세상 안에서 너희는 시련을 가진다.

그러나 힘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겼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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