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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들의 신학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마르다와 마리아는 같은 자매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누가복음과 요한복음 모두 자매가 베다니에 살았다고 한다. 물론 요한복음은 그 자매에게 죽었다 소생한 나사로라는 남자형제가 있다고 말하고 있고 누가복음은 그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꼼꼼히 본문을 읽다보면 나사로는 그냥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비적 사건으로 고안된 인물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요한복음에서도 그 비중이 크지 않다. 11장과 12장에 걸친 이 남매들의 이야기에서 나사로는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께 전하는 전갈에 등장하거나 무덤에서 천에 둘둘 말려서 나오는 기괴한 장면에 등장하거나, 마르다가 베푼 잔치에서 예수와 무리들 사이에 '끼어'앉아 있는 것으로 등장할 뿐 말 한마디 없다. 그에 비해 ..
누가의 여성 재현에 대한 정치신학적 고찰 – 눅 7:36-50을 중심으로 – 이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썼다. 논문을 쓰기 시작하던 시점부터 몇개월은 소논문과 학위 논문의 차이를 배우면서 흘러갔고, 성서 본문과 참고 문헌의 범위가 점점 확장되면서는 이걸 내가 할 수 있을까 의심하면서 시간이 흘렀다. 시작할 땐 머리 속의 논문의 구조를 글로 구현할 수 있을만큼 뚜렷하게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아주 순식간에 구축했다고 생각했던 구조가 붕괴되었고 곧 내가 어디서 시작했는지도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자료의 바다에서 목적지도 없이 표류하며 잡으려 하면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형태를 특정할 수 없는 미끄덩한 물체처럼 되어버린 '논문'이라 불리는 것을 마주할 때마다 끝낼 수 없는 것을 시작했다는 패..
whereas for Plato marriage(=procreation) means the overcoming of death and a way to immortality, in the Lukan text it is death that necessitates marriage and resurrection or (personal) immorality that makes it superfluous..... 플라톤에게 결혼은 죽음을 극복하고 불멸로 가는 길을 의미하는 반면, 누가 텍스트에서는 결혼을 필요로 하는 것은 죽음이며 (따라서) 부활 혹은 (개인적) 불멸에게 결혼은 군더더기일 뿐이다. van Eijk, 'Marriage', 215, Turid Karlsen Seim, The double message ..
"더럽다는 것은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이라는 더글라스의 명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이 명제는 모든 사람과 사물이 우주적 질서 안에 고유한 자리를 가지고 있음을 함축하는 것 같다. 또한 그 자리들이 높고 낮음이 있을지언정, 우주적 질서를 지탱한다는 점에서 똑같이 중요하다고 가정하는 것 같다. 다시 말하면 더글라스의 명제는 자리들, 혹은 그 자리에 배정된 사람들이나 사물들의 상대성과 상호의존성을 가정한다. 하지만 이런 가정이야말로 차별을 은폐하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핵심 요소이다. 실제로는 여성의 사회적 성원권을 부정하면서도 음양론에 의거하여 여성과 남성에게 대칭적이고 상호보완적인 위치를 부여하는 성리학적 세계관이 좋은 예다. 그러면서 여성이 집 밖을 마음대로 나다니는 것을 금기시한다. 하지만 여성의 ..
2021.8-3-8.31 매주 화요일 여성주의성서해석 두 번째 시즌을 진행했다. 참석자 모두 일상이 분주할텐데도 성실하게 참석해주어서 늘 화면이 가득 찼고, 텍스트도 열심히 읽어와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누어주었다. 시즌 두 번째만에 성서본문(누가복음)을 직접 다루겠다고 계획한 것은 나에게는 벅찬 일이었음이 금방 드러났다. 성서본문을 거론하기 시작하자 마자 나는 내가 복음서들의 내용과 특징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성서의 위험성은 그거다. 잘 모르는데 안다고 너무 쉽게 착각한다는 것. 그래서 초반에 두세 차례 잘못된 정보를 모임에서 언급했고 끝나고 나서 성서를 찾아보고 등골이 서늘...했다. 성서를 중심으로 설을 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와 훈련이 필요한지 절실하게 느끼는 경험이었다. 신..
학문적 주제나 신학적 주제로 여자가 말하는 것은 여전히 참으로 불편한 일이다.(물론 나의 잘잘못을 지적하는 집안의 여자가 말하는 것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지만). 자고로 여자는 침묵을 금으로 여기며(닥치고 삼 년 귀닫고 삼 년이라 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까지 자애로운 표정으로 그녀가 배워야 할 것을 말해주는 남자의 입만 볼 것이지, 지가 알면 얼마나 안다고 소중한 공론의 시간을 차지하고 권리를 주장한다는 말인가...말세다. 참으로 말세다. 여자들의 발언은 나이가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지적할 것 투성이다. 입을 열어 말하는 족족 이게 틀렸고 저게 틀렸고 지적하고 가르쳐 주어야 하니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닌데...세상이 변했으니 말하지 말라고 입을 틀어막을 수도 없고 참...역시 성가시다. 반면 ..

요한복음 , 나사로 부활 본문(요한 11장)과 누가복음 16장을 연결해서 읽으면...! "누가복음 16장에서 부자는 가난한 나사로가 이생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형제들에게 경고를 하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나사로가 돌아간다 하더라도 그들은 그를 믿지도 회개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눅 16:26-31). 요한 11:1-12:19의 나래이션은 그 옵션을 발전시킨다: 나사로는 산 자들에게로 돌아온다. 사람들은 그를 보러 온다(12:9). 그러나 유대 지도자들은 믿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나사로를 죽은자로부터 소생시킨 예수를 처형한다." Jorg Frey, Theology and History in the Fourth Goespel: Tradition and Narration, Baylor Unive..
(1) 마가복음 5장은 세 개의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는데, 여기선 야이로와 그의 딸은 빼고, 레기온에 사로잡힌 남자와 혈루증에서 치유받은 여자에 집중해 보려한다. 레기온에 사로잡힌 사람은 남성이고 이방인이다. 혈루증 앓았던 사람은 여성이고 유대인이다. 이렇게 보면 대립항을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둘 다 '정과 부정'의 분류에서 ‘부정’에 속한다는 점, 살아있으나 살았다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점, 자신의 소원을 예수께 직접 고할 수 없었다는 점 마지막으로 예수를 만나 살아있는 죽음을 끝내고 생명을 가진 존재가 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먼저, 레기온에 사로잡힌 남자를 보자. 5장 1 -5절의 압축적 묘사, 그의 고통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가? 그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무덤들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