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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신학 (7)
여기 우리들의 신학
목회서신서들을 페미니스트 비평적 관점으로 분석해 본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 이 문서들의 수사가 기술적이라기 보다는 규정적 - 즉 당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기 보다는 현실에 반응하여 그것을 바꾸기를 추구함 - 이라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논쟁과 지침들의 단순한 분석이 허용하는 것보다 문제의 공동체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악과 덕의 목록은 특정한 맥락(특히 기독교적 상황)과 어떤 특별한 연관성도 없는 표준적 목록들이다. 그러나 과도하게 많은 분량을 공동체의 특정 사람들과 집단들의 행동을 교정하는데 쓰고 있다는 것은 그 사람(집단)들이 저자가 맞서서 반응하고 있는 세력이었음을 보여준다. 2) 목(회)자의 눈을 통해 장면을 보거나 그의 관점을 정상적이고 정통인 것으로 취하..
신학이라는 것이 학문이기만을 고집할 수 있을까? 이것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본질, 인간 관계를 다루며 교회 공동체의 성격과 조직과 운영을 고민하고, 더 나아가 믿는 민족(공동체)의 정체성과 믿는 자들의 공동체가 마땅히 사회에서 해야할 역할을 논한다. 선지자들과 예수와 사도들은 신학의 이러한 공적이고 정치적인 성격을 삶 전체로 증거한다. 그들은 각자 처했던 역사적 맥락과 공동체의 현실, 그리고 개인의 특성에 따라 자기 공동체와 세상을 향해 대단히 다른 색의 의견과 다른 톤의 목소리를 냈고 성서의 저자/편집자(혹은 성령)는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한국에서 신학이라는 영역을 계속 탐구 중인 학생으로 문득 한국 신학계에서 '시대의 목소리'라는 것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신학교에 가보니 신학을 진지하게 공부하는 ..
고대 그리스 이후의 정치사상을 분석할 때, 창조의 이야기에 대한 두 가지 성서 해석 중 어떤 것이 인용되는지를 알아보면 언제나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이것은 나사렛 예수의 가르침과 바울의 가르침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의 뚜렷한 특징이다. 남편과 아내의 과게를 논하면서 예수는 1:27을 언급한다. "태초에 그들을 만드신 이가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다는 것을 너희들은 읽어본 적이 없느냐"( 19:4). 반면에 바울은, 비록 후에 "남자는 여자 없이 존재하지 못하며 여자도 남자 없이 존재하지 못한다"(, 11:8-12)라고 말함으로써 남자에 대한 여자의 종속성을 약화시키고 있지만, 여자는 '남자에게서' 창조되었고 따라서 '남자를 위해' 창조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두 주장의 차이점은 여자의 역할에 관한 태도의 차..
신앙에 대한 의심이 밀려들때면 그런 나를 설득할 수 있는 책들을 찾아 읽었다. 한 때 C.S루이스를 섭렵하고 그의 책을 선물하고 독서모임을 만들면서 나는 루이스처럼 뛰어난 지식인이 믿었다면 나 역시 믿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린 어차피 루이스처럼 기독교 신학과 성서를 집요하게 파고들 자신이 없으니, 그런 과정을 친히 거치고 그가 내린 결정을 신뢰하는 게 낫다고 주변인들에게 말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예수나 하나님을 직접 믿는다기 보다는 예수와 하나님을 믿기로 결정한 신중해보이고 지적이라 판단되는 동료 인간들을 믿었달까. 루이스의 책을 읽으며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정말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루이스의 책 중 천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지옥 거주민 중에 자유주의 신학자가 있었기 때문인데 그는 하나님을 믿었기에..

얼마 전, 동네 도서관에서 “Littor”라는 잡지를 들척이다가 광고에서 발견하고는 대출해 온 책: ⟪행복한 책읽기, 김현 일기 1986-1989⟫, 문학과지성사. 이틀 정도를 읽고는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해 하루에 몇 장씩...아껴가며 읽었다. 일기 형식을 갖춘 이 책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저자의 죽음이 다가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을까? (독자인 내가 그의 죽음을 지연시키고 있다.) 현대신학 수업시간에 ‘흑인신학’의 거두로 배웠던 제임스 콘의 ⟪눌린 자의 하느님⟫을 나는 아직 읽지 않았다. 그런데 이 비평가 선생님은 번역자인 현영학 선생님에 대한 관심으로 이 책을 구해서 읽었다니!! (신학생 주제에 나는 현영학 선생도 모른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인문학자에게도 신학적 의미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존..

⟪탈식민주의 성서비평⟫, R.S.수기르타라자, 양권석, 이해청 옮김, 분도출판사, 2019 ‘성서비평’도 어려운데 ‘탈식민주의’라니...앤서니 티슬턴의 ⟪성경해석학 개론⟫에서 처음 접했을 때...이건 접근하기 어렵겠구나하고는 도전해보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티슬턴의 ⟪성경해석학 개론⟫은 정말 비추다. 가독성도 떨어지고(번역의 문제일까 아니면 티슬턴의 문제일까?) 각 해석학에 대한 소개와 평가가 그다지 공정하지 않다. 예를 들어, 엘리자베스 쉬슬러 피오렌자의 책을 몇 권만 읽고나서 티슬턴의 피오렌자 해석학 소개를 읽으면 그의 성의없음과 ‘중립’을 가장한 편견을 금세 알아챌 수 있다. 나는 수기르타라자가 누군지 모른다. 사실 이 책도 내가 능동적으로 찾은 책이라기 보다는 동네 시립도서관 신착도서 서가를 살펴보..
신학을 공부하면서 점점 더 성경읽기에 관심이 집중된다. 조직신학도 좋고, 교회사도 흥미롭지만 물론 그 모든 것들을 알면 나의 성경읽기는 훨씬 더 풍부해지겠지만 기독교라는 종교와 교회라는 조직에서 벌어지는 모든 주장의 최종 권위는 결국 성경을 향하고, 그래서 내겐 그곳이 최종 결전지다. 아직 여물지 않은 성경읽기의 단상들을 여우신에서 공유해보려고 한다. 누군가 이 신학이 설익었다고, 좀 더 배운 뒤에 말하라고 타박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물 주고 솎아주고 김매는 농부의 비판이 아니라 될성싶지 않으니 엎어버리라는 행인의 별의미없는 손가락질에 굴하지는 않겠다. 서툴어 말할 수 없다면, 우리는 영원히 말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신학에서 나와 그들의 언어로는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말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