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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밋 본문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슬로밋인데, 단 지파에 속하는 디브리라는 사람의 딸이다” (레 24:11)
레위기 24:10-23에서 혼혈아의 어머니로 소개된 슬로밋은 학계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 지나치게 상세해 보이는 슬로밋의 계보가 학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지는 몰라도 슬로밋 자체에 대해 다루어진 연구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요한복음을 포스트콜로니얼 페미니스트적 관점으로 해석하는 김진경의 『Woman and Nation』 을 읽으면서 나는 슬로밋을 떠올렸다.
유대인끼리의 결혼을 강력히 요구하는 유대사회에서 슬로밋은 어쩌다가 외국인 남자와 아이를 낳게 된 것일까? 고대 사회에서 여성은 “선물”이었다. 남성간의 연대와 종족의 확장과 안정을 위해 교환되던 여성은 자신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그 어떤 권한도 없었으니 가부장의 통제를 벗어난 결혼과 성관계라는 것이 불가하다. 그런데 슬로밋은 이집트 남자와 아들을 낳았다. 만약 둘 사이가 자유 연애였다면 슬로밋은 죽임을 당하거나 이집트 남자와 도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슬로밋의 계보에 대한 정보로 미루어 볼 때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 지파와 함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그녀의 아버지가 실리적인 이유로 슬로밋을 이집트(아마도 실제로는 바벨론 남자) 남자에게 혹은 그 집안에게 선물로 주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으며, 바벨론에서의 포로 생활 동안 이런 일은 드물지 않았을 것 같다. 여성들은 가족과 민족의 생존을 위해 교혼(intermarriage)을 강요당했지만 포로 생활이 끝나고 자신들의 혼혈 아이와 함께 귀향길에 올랐을 때 그들은 경멸과 차별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병자호란 때 청의 요구에 응한 조선 정부의 명령으로 청에 끌려갔던 여성들이 조선에 돌아왔을 때, 일본 제국주의 아래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여성들이 독립한 조국(!)으로 돌아왔을 때, 한국 군사정권의 주도 면밀한 지휘, 감독 아래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미국군 위안부로 끌려가 살아갈 때, 한 편에서는 그녀들의 몸과 정신을 함부로 착취하고 짓밟으며 단물을 빨아먹던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와 가부장제가 돌아서서는 외국인과 몸을 섞은 화냥년, 정신대, 양공주라며 더럽다고, 민족의 단일성이 훼손되었다고, 변절자라고 손가락질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슬로밋에 대한 상세 정보가 이런 경멸적 의미에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인물임을 의미한다면 혼혈아의 처형은 혼혈아만이 아니라 슬로밋에 대한 처벌이었을 것이다. 슬로밋을 에스라 9장과 10장의 배경에서 읽으면, 이방인 아내와 아이들을 공동체 밖으로 내쫓은 이스라엘 남성들은 정당성을 획득하고 완전한 시민의 지위를 획득하는데 반해 외국인의 아들을 낳은 이스라엘 여인 슬로밋은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서 차별과 처벌의 대상이 됨으로써 대조를 이룬다.
<2020-2학기 기말과제 중에서>
졸업한 학교에서 배웠던 <레위기>. 그 때 레위기 24장의 혼혈아 내러티브로 소논문을 썼었다. 햇수로는 2년만에 다시 그 레위기 소논문를 꺼내서 발전시켜 지금 다니는 학교에서 논문으로 제출했다. 몇 가지 문제들을 발견했고 해결하려 노력했는데…가장 큰 수확은 “슬로밋”을 읽게된 것이다. 2년전에는 슬로밋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고…혼혈아에만 집중해서 그 아이의 억울한 죽음을 주장했다. 슬로밋이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지만 풀어낼 수 없었다면…이번엔 그 모자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에 대해 좀 더 다가갔다는 생각이다. 수수께끼같은 본문에 이곳 저곳 숨겨져 있는 장치들을 찾아내는 것이 희열에 가까운 짜릿함을 주지만, 이 본문의 저자가 정말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스라엘 사회를 고발하고 있다면 그건 문학적 장치와 기교와는 비교도 안되는 전율을 내게 선사한다. 저자를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글을 쓰려 애썼지만, 나는 내내 저자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너무 저자를 과대평가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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