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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들의 신학
말하려 한다. 본문
신학을 공부하면서 점점 더 성경읽기에 관심이 집중된다.
조직신학도 좋고, 교회사도 흥미롭지만
물론 그 모든 것들을 알면 나의 성경읽기는 훨씬 더 풍부해지겠지만
기독교라는 종교와 교회라는 조직에서 벌어지는 모든 주장의 최종 권위는 결국 성경을 향하고,
그래서 내겐 그곳이 최종 결전지다.
아직 여물지 않은 성경읽기의 단상들을 여우신에서 공유해보려고 한다.
누군가 이 신학이 설익었다고, 좀 더 배운 뒤에 말하라고 타박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물 주고 솎아주고 김매는 농부의 비판이 아니라
될성싶지 않으니 엎어버리라는 행인의 별의미없는 손가락질에 굴하지는 않겠다.
서툴어 말할 수 없다면, 우리는 영원히 말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신학에서 나와 그들의 언어로는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말하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제대로된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고 그래서 영원히 서툴것이다.
그렇지만 말하려한다. 그냥 지껄여지는대로.
말하고 나면 내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이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지만,
그래도 말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우리들의 신학을 가질 수 있다.
결국 ‘여기 우리들의 신학’은 그들의 신학이 아닌 우리의 신학에 대한 열망을 담고 있는 작명이 아닌가!
◇ 여기 우리들의 신학 팟캐스트
네이버 오디오클립 : audioclip.naver.com/channels/2453
팟티 : podty.me/cast/194201
iTunes : bit.ly/theoy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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