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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들의 신학
이방인 사역 본문
A Law-Observant Mission to Gentiles: The Background of Galatians
J.Louis Martyn
아돌프 폰 하르낙 이후 ‘이방인 사역’은 the Gentile Mission, 그러니까 본질적으로 단일한 것으로 여겨져 왔단다(나도 내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1) 베드로는 유대인 사역, 바울은 이방인 사역, 누가-행전의 저자는 초대교회의 발전상을 그렇게 깔끔한 그림으로 그려놓았다(누가-행전은 저자의 의도가 강력하게 반영되어 있어서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2) 이방인 사역에 여러 가지들이 있었을 가능성에 대해 하르낙이 생각지 못한 것은 그가 살고 있던 세계는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과 율법에서 자유로운 그리스도인만이 있을 뿐이지 율법을 지키는 이방인 그리스도인은 없었기 때문이다.(310)
마틴은 바울의 시대에는 그런 그룹이 있었을 수도 있고,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맹렬하게 공격하는 대상 역시 이 그룹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신약 성서는 승리한 쪽의 문서의 모음이며 승리한 쪽은 ‘율법에서 자유로운 이방인 사역’이다. 그래서 우리가 율법을 준수하는 이방인 사역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야고보의 승천’과 ‘베드로의 설교들’이라는 문서는 실제 ‘율법을 준수하는 이방인 사역’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심지어 이들의 사역은 바울의 ‘율법에서 자유로운 이방인 사역’에 선행한다.
마틴은 이런 본문에 기대서 또 갈라디아서 본문 자체의 증거에 근거해 갈라디아서의 ‘대적’들이 실은 상당히 유능한 복음전파자들이었으며, 바울의 복음을 공격하고 허물려는 의도보다는 그의 복음을 완성하려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가설을 세운다. 그는 그들에게서 선입견을 벗겨내고 보기 위해 “대적들” 대신 “교사들”이라고 부른다. (310-312)
“갈라디아인들이 그의 편지를 교사들의 설교가 아직 귀에 쟁쟁한 상황에서 혹은 아마도 그들 옆에 앉아서 들을 것(313)”을 바울이 알고 있었음을 가정하고 갈라디아서를 읽을 때 본문은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중요한 지점에서 갈라디아인들이 우리 앞에 있는 본문을 어떻게 이해했을 것 같은가를 질문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본문 이해에 필요한 과학적 통제와 시적 판타지 모두를 얻게 될 것이다”(313,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는 안되지만 무척 아름답게 들린다.)
바울의 비판/비난을 기반으로 재구성한 교사들의 그리스도와 율법 이해:
“그들(교사들)은 그리스도의 빛 아래서 율법을 비추어 보기 보다는 하나님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법이라는 빛에 비추어 보았다. 이는 그리스도가 율법에 이차적임을 뜻한다.”
“아마도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죄를 위한 희생제물, 심지어 이방인의 죄까지도 해결하는, 하나님의 율법과 조화를 이루는 희생제물이라고 이해했다.”
갈라디아서 3:6-29의 아브라함 이야기를 통한 논쟁: 마틴은 다소 뜬금없는 아브라함 이야기에 대한 바울의 주해가 ‘교사들’의 가르침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라고 추론한다. 교사들이 아브라함 본문에 대한 훌륭한 주해를 피력했고 그 결론은 최초의 개종자인 아브라함이 그러했듯 지금의 이방인 개종자들도 할례를 받고 유대교의 율법을 지킴으로써 완전함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쳤다. 갈라디아인들은 이미 아브라함 이야기에 익숙한 상태인 것이다. “어떻게 바울은 갈라디아인들이 창세기 15:6의 그런 이상한 주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을까?...갈라디아인들의 최근에 아브라함에 대해서 그의 자손들의 정체성에 대해서 많이 들었음을 그가 알았기 때문이다(318)”
바울을 통해서 바울이 공격하고 있는 대상/집단을 재구성 하는 것..이런 읽기의 방법을 mirror -reading 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마틴은 mirror-reading을 통해 바울을 분기탱천케 한 ‘대적들’이 막 나가는 무식하고 이기적인 집단이기 보다는 바울과 마찬가지로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이라고 (아주 흥미롭게!!) 설득한다(그리고 나는 설득되었다). 그들은 그들이 믿는 복음을 전한 것이며, 초기 기독교 생태계에서 ‘율법에 순종하는 이방인 선교’와 ‘율법에서 자유로운 이방인 선교’의 공존했을것이라는 첨 들어보는 이야기가 매우 그럼직하게 들린다.
엄청 재밌다. 다른 글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이 아티클로 처음 만난 Martyn은 글을 친근하고 재미있게 쓰시는 분 같다. (읽은 것을 풀어내는 능력이 많이 부족하오니, 꼭 직접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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