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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예루살렘의 아이히만 (2)
여기 우리들의 신학
“올 겨울에 유대인이 먹을 것이 없다” “보다 신속한 어떤 수단을 통해 일할 수 없는 유대인을 살해하는 것이 가장 인간적인 해결책이 아닌가. 여하튼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을 굶겨 죽이는 것보다 더 낫지 않은가?” 살인이라는 말 대신 ‘안락사 제공’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유대인들에게 ‘가스를 사용한 고통 없는 죽음’을 제공한다고 믿었다. 문제는 양심을 어떻게 극복하는가가 아니라 모든 정상적인 사람들이 육체적 고통을 당하는 데서 느끼게 되는 동물적인 동정심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하는 것. 힘러가 사용한 책략은 이런 본능을 뒤집는 것으로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향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끔찍한 일을 하고 있는가’라고 말하는 대신 ‘나의 의무를 이행하는 가운데 내가 ..
1961년, 예루살렘, 바트 하미쉬파트(정의의 집)의 아이히만 재판 검찰을 위한 유일한 독일인 증인인 개신교 목사 하인리히 그뤼버 감독이 법정에 나왔다. 그는 히틀러에 원칙적으로 반대하면서도 민족주의적 차원에서는 반대하지 않는, 또 유대인 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던 수적으로도 작고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에 있지 않은 사람들 중에 하나였다. 아렌트는 그가 또 다른 독일(대다수의 독일 국민과는 다른 의견을 가진)의 존재를 보여주기는 했지만 아이히만의 유죄를 입증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고 말한다(아이히만의 유죄 그리고 사형 구형은 재판이 시작되기 전 이미 결정되어 있었고, 합리적 의심 너머에 있었다고 아렌트는 비판한다). 이 증인과 관련된 인상적인 한 장면 그리고 아렌트의 일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