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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들의 신학
지옥으로 끌려간 소녀들 본문
'윤금이'를 구글링하자 다음과 같은 정보가 나왔다. 처음 듣는 말들이었다. '미군 위안부' '한국군 위안부'라니...이걸 국가가 주도했고, 인신매매를 통해, 가난에 팔려 소녀들이 이 지옥으로 끌려들어갔다니.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듣는 내가 당혹스럽다.
일본 위안부의 문제는 그나마 이슈가 되고 한국정부는 이랬다 저랬다 하긴 하지만 일본정부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모양을 취한다. 식민지 국가가 피식민지 여성에게 저지른 폭력은 종종 간과되기는 하지만 필요에 따라 민족 이데올로기를 띠고 강력하게 발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나라의 남성이 이 나라의 여성에게 저지른 폭력은 어찌할텐가? 그들은 '국가'와 '민족'의 중흥을 위해 여성들의 몸을 짓밟을 수 있는 권리를 미군에게 일본의 유력자들에게 갖다 바쳤다. 김진경은 식민주의와 민족주의에 여성에 대한 같은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
부끄럽게도 나는 '양공주'라는 말이 가진 부정적 함의를 소문을 통해 주어들었을 뿐 그들이 어떤 이들인지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들을 '위안부'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식민화된 국가가 자신의 여성들을 지킬 힘이 없어 일본에게 빼앗기고 그래서 우리 모두 그것을 마음아파 한다는 사실은 알았어도 주권 국가, 한국의 정부가 제 땅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여성들의 몸을 군인들에게 팔았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한국 여성이 짓밟히던 곳을 외국의 여성들이 채우고 있다. 그곳에 최소한의 인권이라는 것이 존재할리 만무하다. 현실을 모르는 것도 문제. 그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을 힘들어하는 것도 문제.
관심만 있으면, 위키백과가 꽤 많은 정보를 알려주는 세상에서... 왜 내겐 그들의 존재가 떠오르지 않았을까?
<공부용: https://ko.wikipedia.org/wiki/미군_위안부>
미군 위안부(美軍慰安婦) 혹은 한국군 위안부(韓国軍慰安婦)는 주한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했던 여성들을 말한다. 위안부, 정신대로도 불렸다. 양공주, 양갈보, 양색시, 유엔마담, 히빠리, 주스걸 등의 멸칭으로도 불렸다. 미군 위안부 여성들은 한국 매춘부 사회에서 최하층이었으며,불가촉천민과도 같았다고 전해진다.
2013년 11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민주당 유승희 의원에 의해 이날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이 친필 결재한 '기지촌 정화대책'을 국가기록원으로부터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 박정희 정부가 외화를 벌기 위해 미군 위안부와 기지촌 여성을 직접 관리했다는 사실이 확인 되었다.
오늘날 한국에서 위안부라는 단어는 일본군 위안부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1990년대 초까지 한국 사회에서 위안부는 일본군 위안부뿐만이 아니라 한국군 위안부와 미군 위안부 모두를 일컫는 말이었다.대한민국 정부 차원에서도 90년대 초까지 주한미군과 매춘을 하는 미군 기지촌 여성들에 대해 공식 명칭으로 (군) 위안부라는 말을 사용했다. 당시에는 정부뿐만 아니라 시, 군 공무원들도 한국 남성과 성매매를 하는 윤락 여성과 구분해 그들을 '위안부'라고 불렀다. 이들은 '애국자', '민간 외교관', '달러를 벌어들이는 애국자', '달러벌이 역군'이라고도 불렸다. 민간에서는 '양공주', '양색시', '양갈보', '유엔 마담', '산업의 역군'이라는 말로 불렸다. 한국 정부와 미군은 미군 위안부들의 인적사항을 공유하며 이들에 대해 교육까지 해오면서 직접 관리했다.
인원[편집]
1954년 치안국보안과 통계로 전체 매춘여성은 17,300명이었으면 그 중 상당수는 미군상대였다. 1962년에는 2만 명 이상의 미군 위안부가 65,000명의 미군을 상대했다.1977년 통계로는 9,935명이었다.
[인권유린[편집]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미군 위안부의 상당수는 인신매매를 통해 끌려온 미성년자들이었다. 이들에게 행해진 인권유린은 무척이나 참혹했다. 인신매매로 팔려 온 피해자 중 한 명이 기지촌을 탈출해 경찰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요청받은 경찰이 탈출한 여성을 직접 도로 포주에게 데려간 사건도 있었다. 이 사건은 특별한 사례가 아니었다.미군 위안부 중에는 미군 병사들과 연인으로까지 발전되어 연을 맺고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성공한 삶을 사는 경우도 간혹 있었으나, 대부분 미군 위안부들은 단지 미군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고 심지어 병사에게 살해당하거나, 자살하는 여성도 여럿 있었다.
1992년 10월에는 미국 병사의 강간 살인 사건(윤금이 피살 사건)이 발생했다. 1999년 1월에도 미군 상대로 성매매를 하던 미군 위안부 여성이 살해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 대한민국 법원은 경찰의 용의자 신체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했고[46][47] 이후 용의자로 추정된 미국 병사들이 출국함으로써 수사는 미궁에 빠진다. 해당 사건은 2014년 1월 공소시효가 만료됨에 따라 영구 미해결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정치경제적 기여[편집]
1961년 11월 9일 대한민국 정부는 윤락행위 등 방지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모순적으로 성매매를 허용하는 특수 지구를 여럿 설치했고, 이 중 상당수는 미군 기지 인근이었다. 1960년대엔 기지촌 성매매 수입이 한국 국민총생산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미군 위안부는 한국 경제에 큰 기여를 하였다. 1970년대에는 청와대 공무원들이 정기적으로 기지촌으로 가서 미군 위안부 여성들을 모아놓고 국익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격려를 하곤 했다. 1973년에는 민관식 당시 문교부 장관이 조국 경제 발전에 기여해 온 소녀들의 충정은 진실로 칭찬할만하다고 말해 논란이 된 적도 있다. 1971년 제3공화국은 정부 각 부처 차관이 참석하는 기지촌 정화위원회를 구성하여 기지촌 활성화 정책을 폈다. 이는 당시 안보 전략 수정으로 추진되던 주한 미군 철수를 막기 위함이었다.
몽키 하우스[편집]
전국 접객여인 검진 결과 위안부 66%가 보균자라는 1959년 10월 18일 동아일보 기사
1972년 주한미군 1천 명당 성병 발생 건수는 692건이었다. 대한민국은 성병에 걸린 미군이 자신의 상대방으로 지목한 여성을 찾는 접촉자 추적조사를 하여 지목된 여성들을 '몽키 하우스'라고 불리는 낙검자 수용소에 보냈다. 미군과 한국 정부는 수용소에서 여성들의 성병 검사를 했는데, 이때 성병에 걸린 여성들은 성병이 완치될 때까지 일반 의료 행위보다 과도한 페니실린을 투입받았다. 이로 인해 생긴 페니실린 쇼크로 사망하는 여성들도 상당했다. 하지만 의료 사고 낸 의사들을 불기소 처분하겠다는 공문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이들이 실제 처벌받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2013년 11월 6일에 대한민국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 유승희 민주당 의원의 국정감사에서 국가가 여성들을 관리하기 위해서 작성한 사람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외국 여성[편집]
1990년대 이후, 한국 여성 대신 인신매매된 필리핀인, 러시아인 등의 외국 여성이 주한 미군을 상대하게 되었다. 주한 미군은 인신매매, 매춘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계속 발표 중이다. 주스바로 일하는 외국 여성들은 주스걸이라고도 불렸다.
1990년대 중순까지 외국 여성은 증가해 기지 주위 클럽 여성의 80%에서 85%가 되었다. 2004년 3월 22일에 한국 정부는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시행했다. 2005년에는 기지촌 매춘부의 90%는 러시아 여성과 필리핀 여성이었다. 2000년대에는 화재로 오산공군기지 가까이에 있는 위안소, 술집에 감금되어 있던 외국 여성들이 불에 타 죽는 사건이 잇달아 일어기도 했다. 현재는 매춘부의 90%가 동남아시아 출신이다. 2005년 5월 20일에 클럽을 상대로 한 재판에서 승소한 필리핀 여성은 필리핀에서 한국 기업의 가수로 고용되었지만 한국에 오자마자 감금되어 미군 상대의 매춘을 강요당한 것을 밝혔다. 이 사건으로 법원은 클럽 주인에게 집행유예와 사회봉사를 부과했다. 여성들은 주스를 많이 팔지 못하면 주스바의 주인들에 매춘을 강요당했다. 여성들이 매춘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미군 병사와 결혼하는 것뿐이었다. 주스바의 상당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공식 인가를 받고 있어 경제적으로도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주스바 업주들은 정치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 2009년에는 미군 캠프 케이시의 미국 병사가 여성들에게 구혼하는 것을 저지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2010년에 미국 국무부는 미군 기지의 부근에서 가혹한 상황에 처한 여성들을 두고 현재 한국에서 행해지는 인신매매 중 하나라고 보고했다. 필리핀 대사관은 필리핀 여성에게 매춘을 강요하는 바를 감시하는 '워치리스트'를 작성했다.필리핀 정부는 여성들이 주한미군 기지 가까이에 있는 주스바에서 일하는 것을 승인하지 않기로 했다.주한미군은 주스바에서 너무 비싼 음료를 주문하는 것은 현대의 노예제인 인신매매 산업에 가담하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2013년 6월에는 미군이 병사 일부에게 주스바 출입을 금지했던 것 등에 대해 주스바 업주 등 200여 명이 오산공군기지의 앞에서 항의 데모를 실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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