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우리들의 신학

아삽의 시들과 등정의 노래들 본문

글/신나(신학생 나부랭이)의 글

아삽의 시들과 등정의 노래들

BundleE 2021. 3. 23. 16:54

비가 오는 토요일이다. 우산을 받쳐들고 아침 운동을 나섰다. 귀에 꽂은 이어폰으로는 김하나의 측면돌파를 들으면서 그녀는 말하게 두고 나는 잡다한 생각을 한다. 오늘은 우산을 받쳐들고 트랙을 돌며 무슨 생각을 했나...문득 어제 지긋지긋해하며 번역했던 시편 관련 서적의 한 챕터가 떠올랐다.

 

이 책이 제목이 뭐였더라...the Message of Psalter: An Eschatological Programme 이거다. 저자는 아삽의 시들과 등정의 노래들을 비교하면서(난 이게 뭔지 잘 모른다) 아삽의 시들은 구원 이전 시기의 시들이고 등정의 노래들은 구원 이후의 시들이며 이 각각이 예언서에서 나타나는 2단계의 종말론적 프로그램에 조응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시편의 최종 편집자에게 예언자들의 종말론적 프로그램이 일종의 틀로 작동했고 그래서 아삽 시와 등정 시에서 종말론적 프로그램의 다른 두 단계의 특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시편도 모르고 예언자도 모르는 내가 이런 글을 번역하고 있으려니 (게다가 중간 중간 박혀있는 읽을 수 없는 히브리어들까지 더듬더듬 타이핑을 하면서) 정말 짜증이 턱까지 차 올랐다. 물이 찰랑거리면 작업을 그만두는 방식으로 그러니까 정말 한계가 찾아올 때까지만 번역을 하는 방식으로 33페이지의 본문을 번역하는데 적어도 15일은 걸린 것 같다 (한계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그리고 어제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작업을 일차로 끝냈다. 하기 싫어 대충 뭉개놓은 부분이 많아서 발제를 하려면 몇 번은 더 다듬어야 할 것 같다.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작업을 의무때문에 하고 있다는 것에 화가 나있었는데, 트랙을 돌면서 떠오른 것이 바로 이 작업 중에 본 구절이라니 새삼 인생에는 무의미한 것은 없는 것인가 하는 깨달음. 저자는(저자는 누구냐 하면...기다려봐요...David C. Mitchell이랍니다) 아삽시는 응집력이 떨어지는 일종의 원심력이 작용하는 텍스트이고 등정시는 응집력이 높은 구심력이 작용하는 텍스트라고 말했다. 아삽시의 응집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은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해주기를 하나님께 요청하면서 과거와 미래로 시선이 분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전 하나님의 구원행위를 상기시키기 위해 아삽시는 역사적 인물들과 장소를 말하면서 37개의 고유명사를 사용하는데 이런 방식은 자연스럽게 텍스트의 응집력을 떨어뜨리게 되고 원심력이 작동하는 텍스트는 시편 기자의 불만족, 불안, 고통의 느낌을 전달한다. 반대로 등정의 노래들은 거의 고유명사를 사용하지 않으며, 현재의 축복과 풍요에 감사하고 이것이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다. 시인의 시선은 현재에 집중되어 단순하며 특정 어구들의 반복과 함께 텍스트의 응집력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구심력이 작동하는 텍스트는 시편 기자의 만족, 안정, 행복의 느낌을 전달한다.

 

나라는 텍스트는 아삽시들에 가깝다. 나의 시선은 과거와 미래로 분산되어 수많은 고유명사를 가진 인물과 장소들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자꾸만 과거의 어느 곳으로 가서 어떤 사람을 만나고 동시에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다가올 것 같은 미래를 근심한다. 자연스럽게 현재에 대한 집중력은 떨어지고 삶에 구심점을 잃는다. 원심력이 작동하고 있는 나라는 텍스트에서 나와 타인들은 아마도 불만족, 불안, 고통을 읽겠지.

 

그러나 나의 현실이 객관적으로 그만큼 고통스러운가는 또 다른 문제이기는 하다.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꼭 고통스러운 것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나의 현실은 등정의 노래들과 같을 수 있다.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시간은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신 이후의 삶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구원 이전과 구원 이후를 삶에서 분명하게 구분해서 인식하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겠지. 당신이 오늘 구원받았다고 확신한다면 자리에서 일어나 주십시오. 그리고 외쳐봅시다. 나는 구원받았습니다!…이런 장면을 어디선가 본 거 같은데. 내가 말하는 구원은 그런 거랑은 완전 다르긴 하지만…

 

사실 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세계는 아삽의 시들에 가깝다. 그러나 나의 삶이 등정의 노래들처럼 구심력을 가지고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를 자꾸 현재가 아닌 과거와 미래로 끌고 다니는 힘에 저항해서 현재에 두 발을 딛고 서서 오늘을 응집력있게 살아갈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식으로 정신승리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나의 손을 붙들고 계심으로 자꾸 구덩이로 미끄러져 내리는 두 발을 버둥거리며 기어 올라오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번 학기엔 적어도 아삽의 시들과 등정의 노래들은 읽어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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