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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들의 신학
게르트 타이센의 해로운 해석 본문
"세 번째 확장된 개념은 복음서 끝 부분에 나타난다. 여인들만 나타난 십자가 처형장. 여인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겼던 자들"(15:41). 여기서 여인들은 따르는 자들로 언급된다. '부양'(providing)은 그들의 활동이다. 물질적인 생계 부양은 베드로의 장모 역시 행한 일이다.(1:31)"
게르트 타이센, 『복음서의 교회정치학』, 류호성, 김학철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02: 61
왜 엘리자베스 쉬슬러 피오렌자가 게르트 타이센이 제시하는 초기교회 역사적 재구성에 이의를 제기하는지 알겠다. (피오렌자는 이의를 제기하고, 나는 빡친다.) 타이센이 끊임없이 주지시키는 '방랑하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들'은 지역 공동체와 위계적으로 구분되는 용어이다. 12제자 그룹은 모두 방랑하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들이었으며 지역 공동체들은 이 지도자들을 다방면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여성들은 잘해봐야 지역공동체의 책임자들인데, 이들의 활동은 '부양'이다. 정말로 초대 교회의 구심이 방랑하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들이었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고, 이런 방식으로 역사를 재구성하면서 남성과 여성을 이원화하고 전형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해석은 많이 해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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