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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들의 신학
반드시 맑은 정신으로 본문
나로서는 어떤 주제로 책을 쓰고 싶으면 우선 주제와 관련된 상이한 내용 하나하나에 친숙해질 때까지 세부 사항을 차근차근 알아 나간다. 그러던 어느날 운이 좋으면 각각 다른 내용이 서로 알맞게 연결되면서 전체 윤곽을 파악하게 된다. 그 다음에 파악한 내용을 적어 내려갈 따름이다. 꼭 닮은 비유를 들자면, 우선 안개 속에서 산책로와 산등성이와 산골짜기에 따로따로 익숙해질 때까지 구석구석 산을 돌아다녀 보고 나서, 멀리서 밝은 햇빛에 드러난 산 전체를 보는 체험과 비슷하다.
내 생각에 이러한 체험이 탁월한 창작물을 내는 데 필요한 조건이지만, 체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실 체험에서 비롯된 주관적 확신은 치명적 오류에 빠지기도 한다. 윌리엄 제임스(1842-1910)는 웃음 가스에 취한 사람의 경험에 대해 묘사한다. 웃음 가스에 취할 때마다 우주의 비밀을 알았지만, 깨어나면 모조리 잊어버렸다. 마침내 필사적 노력 끝에 우주에 대한 통찰이 희미해지기 전에 비밀을 적을 수 있었다. 그는 완전히 깨어나자마자 적은 글을 급히 읽었다. "석유 냄새가 사방에 가득하다"는 문장이었다. 순간적으로 통찰했다고 생각했지만 착오일 수도 있기 때문에, 신성한 도취 상태가 지나간 다음에는 반드시 맑은 정신으로 검토해야 한다.
버트런드 러셀, 『러셀 서양철학사』, 서상복 옮김, 을유문화사, 2020:187-8
주제와 관련된 상이한 내용 하나하나에 친숙해질 때까지 세부 사항을 차근 차근 알아나가는 것이 "정도"이자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신성한 도취 상태에서 로지텍 키보드가 신들린 듯 무엇이든 쏟아내주기를 강렬히 희망한다. "석유 냄새가 사방에 가득하다"는 우주적 통찰만이 컴퓨터 화면을 채우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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