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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들의 신학
지속 가능하게 만들 집단적 아편의 필요인가 본문
"Since masculine identity for middle-class men of urban cultures is produced by intensive socialization and expensive education, "temperamental and occupational similarity between women and men threatend the economic, psychological, and social security or middle-class dominated families." While middle-class men produce symbolic and literary expressions of gender dimorphism and misogynism, peasant and working-class life is commonly shot through with symbolic manifestations of male superiority...Men who experience daily humiliation and frustration because of their economic and social disadvantages find their most important form of solace in looking down on and abusing women. This psycological cushion against oppression makes class exploitation more bearable; perhaps as some feminists argue, it makes it more durable."
Elisabeth Schüssler Fiorenza, In Memory of Her, 10th edition: 91
"도시 문화에서 중산층 남자들의 남성적 정체성은 집중적인 사회화와 비용이 많이 드는 교육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여성과 남성 간 존재하게 된 성질상 그리고 직업상의 유사성은 경제적, 심리적, 사회적 안정이나 중산층의 지배적이던 가족형태를 위협했다." 중산층 남자들이 상징적이고 문학적으로 젠더 이형성과 여성혐오를 표현했다면, 소농과 노동계급의 삶은 흔히 남성 우월성의 상징적 재현으로 가득했다...그들의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취약성으로 인해 일상적으로 굴욕과 좌절을 경험하는 남성들은 여성을 깔보고 학대하는 데서 아주 중요한 형태의 위로를 발견한다. 억압에 대한 이런 심리적인 쿠션이 계급 착취를 좀 더 참을만하게 만든다. 그리고 몇몇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한 대로 계급 착취의 내구성을 강화시킨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역사적 재구성은 좀 과장하자면 짜릿할 정도로 흥미롭다. "고대의 여성들", "그리스-로마 사회의 여성들", "유대사회의 여성들"이라고 퉁쳐진 존재들이 자신을 가둔 범주를 사방에서 뚫고 나와 자신들이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했는지, 엘리트 남성들이 정하는 규범적 여성상을 개무시하고 현실을 한 인간으로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보여준다. 많은 고대 문헌의 새로운 발견과 고고학적 발견으로 인해 우리는 이제 문자그대로 날마다 고대의 여성을 새롭게 발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피오렌자의 위의 글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현상으로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 '백래쉬'를 떠오르게 한다. 계층 간 불평등이 심화되고 그것을 구조적으로 해결할 능력이 없는 사회는 어떻게든 그것을 "견딜만하게" 그래서 "지속가능하게"만들 집단적(인민의) '아편'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종교일 수도 있고 여성혐오를 통해 얻는 '남성 우월성'이라는 심리적 만족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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