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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신나(신학생 나부랭이)의 글

그녀를 추모하며

BundleE 2021. 6. 10. 11:25

<그녀를 추모하며, in memory of her>

 

"우리는 화산이다" 어슐러 K. 르귄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여자들이 우리의 경험을 우리의 진실로, 인간의 진실로 내놓으면 모든 지도가 바뀐다. 새로운 산맥들이 생긴다." 바다 및 화산과 같은 새로운 목소리들이 망망대해에서 분출하면, 새로운 섬들이 탄생한다. 이것은 격렬한 사건이자 놀라운 사건이다. 세상이 바뀐다. 침묵은 사람들이 의지가지없이 괴로워하도록 만들고, 위선과 거짓이 자라고 번성하도록 허락하고, 범죄가 처벌되지 않도록 돕는다. 인간다움에서 목소리가 중요한 특징이라면, 목소리 없는 자가 되는 것은 인간다움을 상실하거나 자신의 인간다움으로부터 차단되는 것이다. 침묵의 역사는 여성의 역사에서 핵심적인 문제다."

 

리베카 솔닛,『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김명남 옮김, 창비, 35쪽

 

2021년 3월 공군 부사관 이 모 중사가 상관 장 모 중사에 의해 원치 않는 회식자리에 불려나갔다. 이후 부대로 복귀 중 운전병이 운전하는 차 뒷자석에서 그녀는 자신의 상관에게 더러운 일을 당했다. 이후 상부에 여러 차례 신고하고 도움을 요청했으나 조직은 피해를 당한 자신의 구성원을 돌보지 않았다. 오히려 여성 조직원이 남성 조직원을 고발하는 그 순간부터 그녀의 호소와 고통은 '조직적'으로 묵살되었고 사망하기 직전까지 자행되었던 2차 가해는 결국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 사건 이후 군조직에서 이 모 중사가 당한 성폭행과 유사한 사건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조직적으로 은폐되어 왔는지 연일 폭로되고 있다. 죽고싶지 않지만, 너무 살고 싶지만 죽음이라는 선택지만이 내 앞에 놓여있다고 느꼈던 한 인간의 절망감에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하다.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성폭행이 개인 남성의 일탈일 뿐 모든 남성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인식하는 것은 말이 안되고 밤길 두렵다는 여성들의 호소는 피해망상에 불과하다며 목청을 높이던 이준석씨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 역시 장 모 중사의 일탈에 불과한 것인가? 그렇다면 군대 내 조직적 은폐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남성 중심의 조직에서 여성들의 문제제기는 조직에 대한 공격으로 인식된다. 그들은 조직과 남성 구성원을 지키기 위해 피해자에게 침묵을 요구한다. 집요하고 조직적인 침묵에 대한 요구는 피해자가 영원히 입을 다물게 될 때까지 계속된다. 이 모 중사는 첫 번째 희생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그래서 더 이상 같은 폭력과 죽음이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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