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우리들의 신학

사도신경의 메시지를 통한 상징 권력의 구조 본문

글/신나(신학생 나부랭이)의 글

사도신경의 메시지를 통한 상징 권력의 구조

BundleE 2021. 7. 5. 15:05

예배에 참석해서 아무 생각없이 <사도신경>을 외다가 아...나는 이제 이것을 믿지 않는구나라는 현타가 찾아왔을 때의 당혹스러움.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동정녀 수태를 믿지 않게 되니, 이런 신앙을 강요하는 사도신경 전체가 권위를 잃게 되었다.

공동체의 '신앙고백'에 참여할 수 없다면 내가 신앙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신앙공동체의 일원이 되기를 원하는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의 공동체 잔류가 가능한가?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기독교 교회들에서는 '사도신경'이 신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종의 잣대(canon)이기 때문이다. 주일마다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행위를 통해 성도들은 사도신경을 믿기로 다짐하고, 그 종교적 권위를 인정하기로 합의한다. 이 인정을 기반으로 목사의 설교는 종교적 힘을 발휘하고 교회 안의 여러 위계 구조들은 정당성을 획득한다. 이 매커니즘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권위와 그 권위를 인정할 수 있게 하는 제도적 장치와 대중의 오인과 인정(부르디외의 개념)이 필수적이다. 누군가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게 되면 그 사람에게는 매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 그 다음엔 뭐가 남는걸까? 종교는 그것으로 끝일까?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기독교와 신학과 교회가 가능하지는 않을까? 다만 경험하지 못했으니 상상하지 못할 뿐이고,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끝장날까를 두려워하며 현상태의 유지에 절망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도신경의 메시지를 통한 상징 권력의 구조는 역사적으로 교회의 예배 예식에서 반복적 암송의 방식으로 고백되는 과정과 문자화된 언어를 통한 메세지의 고정화 과정을 거치면서 여기에 참여한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사도신경을 만들어 낸 교회 권력의 의도와 목적에 맹목적으로 순응하게 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기독교인들은 상징 권력을 통해 주입되는 사도신경의 메시지를 그대로 자신의 신앙고백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다양한 성서 해석의 가능성과 자유로운 신앙적 모험성, 나아가 실천적, 윤리적 삶의 신앙으로부터 끊임없이 배제, 소외되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주체로 규정되어 온 것이다"

 

김상기, "사도신경에 나타난 교회의 상징 폭력: 피에르 부르디외의 상징 권력 이론의 틀에서", 기독교 사상 48, 2004, 244-259: 255

 

여기 우리들의 신학 팟캐스트

팟빵 : podbbang.com/ch/1769565

네이버 오디오클립 : audioclip.naver.com/channels/2453

팟티 : podty.me/cast/194201

iTunes : bit.ly/theoyws

 

'구독'과 '좋아요'와 '댓글'은 언제나 환영해요.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