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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그리스도와 신학적 예수 본문
신앙에 대한 의심이 밀려들때면 그런 나를 설득할 수 있는 책들을 찾아 읽었다. 한 때 C.S루이스를 섭렵하고 그의 책을 선물하고 독서모임을 만들면서 나는 루이스처럼 뛰어난 지식인이 믿었다면 나 역시 믿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린 어차피 루이스처럼 기독교 신학과 성서를 집요하게 파고들 자신이 없으니, 그런 과정을 친히 거치고 그가 내린 결정을 신뢰하는 게 낫다고 주변인들에게 말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예수나 하나님을 직접 믿는다기 보다는 예수와 하나님을 믿기로 결정한 신중해보이고 지적이라 판단되는 동료 인간들을 믿었달까.
루이스의 책을 읽으며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정말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루이스의 책 중 천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지옥 거주민 중에 자유주의 신학자가 있었기 때문인데 그는 하나님을 믿었기에 신학을 공부했는데 결국 머리가 너무 커져 어떤 것도 제대로 믿지 못하게 되고 다른 이들마저 믿음에서 멀어지게 만든 존재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옥의 거주민이고.
데일 엘리슨의 『역사적 그리스도와 신학적 예수』는 역사적 예수가 신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에 대한 저자의 깊은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내가 막연히 혐오했던 자유주의 신학자의 사고에 가까워진 지금, 나 역시 성서의 역사성과 나의 신앙을 어떻게 조화시킬지, 페미니즘과 성서, 성서와 나의 신앙이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지 부단히 고민 중이다. 자유주의 신학자는 루이스의 책에서 받았던 인상처럼 자신의 큰 머리를 자랑스러워하는 우스꽝스러운 지식인이라기 보다는 정직하고자 하기 때문에 부단히 고심하고 괴로워하는 자에 가까운 것 같다. 본문 중에 엘리슨이 C.S. 루이스의 이야기를 언급하는 부분, “그는 자신이 회심하게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복음서의 역사성에 관한 증거가 놀라울 정도로 견실”한 점을 들었다.”(데일 엘리슨,, 『역사적 그리스도와 신학적 예수』 , 김선용 옮김, 서울: 비아, 2022: 94쪽) 나의 신앙이 발딛고 서있던 루이스의 변증이 나의 발 아래서 조각 조각 깨져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세계가 무너져 내렸다.
“신학은 얼마나 역사를 필요로 할까?” 만약 역사성이 신학의 근거가 될 수 없다면 우선 유대교와 그리스도교가 다른 종교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이 힘을 잃는다. 성서의 신비체험, 성서 인물들의 경험이 다른 종교인들의 체험에 비추어 볼 때 사실일 개연성이 있다고 설명하면 유일한 참된 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라는 주장은 힘을 잃는다. 나는 “유일한” 참된 종교로서, 어느 다른 종교보다 ‘우월한’ 종교인 그리스도교를 좋아했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문제는 복잡하다. 나는 이전의 신앙의 자리와는 다른 자리에 서 있음에도 나의 인식과 개념의 많은 부분은 여전히 이전의 신앙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못했고 그 언저리를 맴돌며 질척거리고 있다. 무너져 폐허가 된 곳을 떠나지 못하고 재건하지도 못한 채 서성인다.
엘리슨의 결론에 쉽게 동의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엘리슨과 같이 신비한 체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엘리슨 보다 어느 정도는 더 회의적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내 지식과 경험의 한계와 답해지지 않은 많은 질문들로 인해 우선은 회의적 그리스도인으로 정체화를 해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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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그리스도와 신학적 예수 - 예스24
역사적 예수 연구의 의미는 무엇인가? 역사적 예수 연구의 한계는 무엇인가?역사적 예수 연구에 평생을 바친 이의 역사적 예수 탐구에 대한 성찰현대 대표적인 역사적 예수 연구가 중 한 사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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