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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들의 신학
그래서 그들은 그토록 과감할 수 있었다. 본문
요한복음 학자들이 요한복음 자료의 독립설로 기울어진 것은 요한복음이 공관복음과 비슷한 모티프를 가지는 단화들의 경우도 너무 다르게 그리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히브리 성서의 필사자들이 극도로 신중하게 필사하는 것과 같은 전통을 염두에 두면 전해받은 전승을 복음서 저자(들)가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다는 상상은 어려웠을 것이다. Frey가 Theology and History of the Forth Gospel에서 요한복음의 성령(파라클레토스)의 작업에 대해 길게 설명한 이유는 요한복음 저자(들)가 공관복음서라는 자료를 놀랍도록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재구성한 행위를 설명하고자 함이다. 요한공동체는 자신들의 다른 해석과 이야기의 창의적 재구성이 '성령'에 의해 정당화된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토록 과감할 수 있었다.
요한복음이 독립적인 자료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공관복음서를 알고 있고 그것을 자료로 사용하되 마태나 누가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창의성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어떤 식으로 설명할 것인가는 이 가설의 중요한 논제 중 하나로 보인다. 왜 그래야 했는지, 그리고 어떤 근거로 그런 작업을 정당화했는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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