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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미국을 비추는 거울 본문
지금이야말로 미국인은 자신들의 선택한 삶의 양식이 다른 사라들과 나눌 만한 것이 못 된다는 엄연한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나는 8년 전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 의장인 고 마누엘 라레인(Manuel Larrain) 주교에게, 필요하다면 라틴아메리카로 선교사가 오지 못하게 헌신할 각오가 서 있다고 말했다. 그의 대답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우리 라틴아메리카 사람에게 선교사는 필요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만나서 교육시킬 수 있는 유일한 미국인입니다. 그들에 대해 그 정도 책임은 우리에게 있는 거죠.”...이 전쟁과 외양인 인류에게 풍요로운 삶을 제공하겠다는 고결한 이상과 너그러운 동기에서 나온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이상 뒤에 감춰진 음모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원래 계획은 다 압살되고 한 가지 강력한 목표만 남게 되었다. 그 목표란 극 소수에게만 풍요를 가져다주는 삶의 양식과 죽음의 양식을 지켜내겠다는 것이다. 이런 삶과 죽음의 양식은 널리 확신시키지 않으면 지켜낼 수 없는 것이므로 풍요를 누리는 자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모두의 의무라고 선언한다. “모두가 더 많이 가지기 위해서”라는 구호는 이미 속셈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말은 “내가 덜 가질까봐”로 들린다. (이반 일리치 <폭력, 미국을 비추는 거울> 32-33, ⟪깨달음의 혁명⟫, 사월의 책)
일리치의 예리한 통찰은 그가 마치 지금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듯 생생해서 무척 큰 쓸모를 가진다는 생각이 든다(일리치는 모든 것이 경제로 환원되는 세계에 대한 저항으로 가치나 쓸모라는 말 대신 축복, 은혜라는 말을 썼다고 하는데, 내게는 축복과 은혜가 너무 오염된 단어라 따르기가 어렵다...). 낯선 상황에서 벌어지는 과거의 일임에도 나는 그의 글을 통해 현재를 떠올리고 현재를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될 때가 있다.
선교...
극소수에게만 풍요를 가져다주는 삶의 양식과 죽음의 양식을 지켜야 하는 사명
일정한 삶의 양식만이 모두가 획득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이라는 거짓된 상식의 확산
그게 오늘도 우리가 하고 있는 일 혹은 당하고 있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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