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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들의 신학
"나는 자기는 한 사람의 개인이지 사회적 현상은 아니라고 큰 소리로 항의하는 역사가보다는 자기 자신의 상황을 최대한 의식하고 있는 역사가가 자신의 상황을 더 잘 극복할 수 있고, 또한 자신의 사회와 자신의 사고방식이 다른 시대, 다른 나라에 속한 사회와 사고방식과 본질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더 잘 평가할 수 있다고 감히 확신한다. 자신의 사회적, 역사적 상황을 넘어설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은 그 상황에 자신이 어느 정도 포박되어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그 분별성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64) 『역사란 무엇인가』, E.H.카, 김택현 옮김, 까치, 2015 그러니까...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누군가는 다 해놓았더라는...아님 누군가 해놓은 말을 어디선가 듣고는 내가 생각한 것이라고 착각하는것인가.....
"당시는 천진난만한 시대였으며 그래서 역사가들은 자신들을 가려줄 한 조각의 철학도 걸치지 않고 역사의 신 앞에서 벌거벗은 채로 부끄러움도 없이 에덴 동산을 돌아다녔다. 그때 이후 우리는 죄를 알게 되었고 타락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역사철학이 필요없는 척하는 역사가들이 나체촌의 주민들처럼 교외의 전원주택지에 에덴 동산을 재건해보려고 애쓰고 있지만, 그것은 남의 눈을 끌어보려는 쓸모없는 짓일 뿐이다. 오늘날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그 거북한 질문은 더 이상 회피될 수 없다."(33) 『역사란 무엇인가』, E.H.카, 김택현 옮김, 까치, 2015 꽤 오래 전에 읽기는 시작했던 것 같은데 마치지 못한 이 책을 이번에는! 진득하니 읽어보려고 한다. 그런데 1장부터 이런 문장이 있었다고?! 라는 ..

「마가복음 12:41-44에 나타난 과부의 헌금에 대한 연구」, 이민규 이 논문은 마가복음의 자신의 전재산 두 렙돈을 성전에 바친 과부를 보고 예수께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라고 하신 말씀에 대한 신선한 해석을 제시한다. 전통적으로 이 본문의 과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 놓은 참된 신자의 모습으로 추앙되었고 필자에 따르면 적어도 칼빈 이후로 이러한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라이트(A.G.Wright)는 전 재산을 바치는 과부의 봉헌이 과부의 재산을 탐하는 “서기관”에 대한 예로 보아야 한다고, 따라서 예수의 언술은 예루살렘 당국자들에게 종교적 헌신을 맹신하게 되어 기만당하는 것에 대한 탄식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라이..

예수는 스스로 자기 이름과 '나'라는 말을 동의어로 쓸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자기 신체 운동을 지각할 수 있으므로 다른 누구보다 풍부하고 충실한 의미로 자기 이름을 사용했을 것이다. 예수가 앞에 있을 때 친구들은 그의 신체 움직임을 지각하고 나서 그의 생각을 알아맞힐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예수'라는 이름은 여전히 그들이 경험할 수 있는 어떤 것을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예수가 죽은 다음 친구들은 지각을 기억으로 대체해야 했고, 이는 그들이 예수라는 이름을 사용할 때 일어나는 심리 과정에 변화를 일으켰다. 예수와 알고 지낸 적이 전혀 없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심리과정과는 더욱 다를 수 밖에 없다... 『러셀 서양철학사』, 버트런드 러셀, 서상복 옮김, 을유문화사, 2020:95 러셀이 파르..
"마리아가 동정녀였다는 사실을 아무도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 또한 아무도 그녀가 동졍녀가 아니었다는 사실 역시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 과학은 반복되는 것을 연구한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 것과 부딪힌다." 마커스 보그와 톰 라이트의 『역사의 의미』 중 톰 라이트의 문장. 273쪽 아무도 그녀가 동정녀가 아니었다는 사실 역시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 문득 반복된 DNA검사가 친자임을 가리키는데도 자신은 아이를 낳은 적이 없다는 구미의 석씨가 생각났다.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 것과 부딪힌다는 말은 여기서 적용가능한가? 여기 우리들의 신학 팟캐스트 팟빵 : podbbang.com/ch/1769565 네이버 오디오클립 : audioclip.naver.com/channels/2453 팟티 ..

복음서 기자들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전승을 기록하고 변형하고 확장했을까? 복음서의 수사학은 어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것일까? 그들의 "새로운" 해석은 어떤 방식으로 권위를 획득할 수 있었을까? 게르트 타이센의 『복음서의 교회정치학 - 복음서에 대한 사회-수사학적 접근』은 이런 질문을 가지고 복음서를 해석한다. 타이센은 교회지도자의 임무를 5가지(기본적 종교적 전승의 수집과 각색을 통한 합의 창출, 공동체의 외부 관계 설정: 세계관 창조하기, 유대교와의 분리된 정체성 강화, 공동체의 내부관계 설정, 개인과 세대로부터 독립적인 권위 구조 형성)로 제시하고 각각의 임무 성취라는 관점에서 복음서를 해석하고 있다. 많이 흥미로웠다.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특히 인상깊게 읽었는데, 아마도 내가 요즘 ..
마커스 보그와 톰 라이트가 역사적 예수에 대해 논쟁한 책, 『예수의 의미』를 읽고 있다. 3부 예수의 수난과 죽음까지 읽었는데...예수의 죽음에 이르자 톰 라이트의 글이 점점 더 참기 어려워진다. 예수는 자신을 하느님의 구원사 가운데 절정이라고 인식하고 있었고, 자신의 죽음을 통해 하느님의 나라가 현실로 구현되리라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라이트는 이런 주장을 하기 위해 바르 코흐바를 예로 든다. 바르 코흐바가 품었던 소명의식을 예수라고 품지 않았을리 없다는 식이다. 그러나 바르 코흐바에게는 그를 별의 아들이자 성서에 예언된 그 메시아라고 말해준 랍비 아키바가 있었다. 로마에 맞선 유대 해방 전쟁에서 그가 지도자가 되어 주길 열망하던 민중과 랍비 아키바의 지지가 없었더라도 그가 스스로를 메시아라 생각..
"세 번째 확장된 개념은 복음서 끝 부분에 나타난다. 여인들만 나타난 십자가 처형장. 여인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겼던 자들"(15:41). 여기서 여인들은 따르는 자들로 언급된다. '부양'(providing)은 그들의 활동이다. 물질적인 생계 부양은 베드로의 장모 역시 행한 일이다.(1:31)" 게르트 타이센, 『복음서의 교회정치학』, 류호성, 김학철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02: 61 왜 엘리자베스 쉬슬러 피오렌자가 게르트 타이센이 제시하는 초기교회 역사적 재구성에 이의를 제기하는지 알겠다. (피오렌자는 이의를 제기하고, 나는 빡친다.) 타이센이 끊임없이 주지시키는 '방랑하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들'은 지역 공동체와 위계적으로 구분되는 용어이다. 12제자 그룹은 모두 방랑하는 카리..
격렬한 당파 싸움, 사회 계급 간 갈등과 전통적 가치에 대한 신뢰의 상실은 정치 질서가 자기 파멸의 가장자리에서 끊임없이 요동치는 그런 상황을 연출했다. 정권 경쟁이 끝난 후, 승리한 쪽은 공적인 업무 수행을 완전히 독점하여......패배한 사람들은 물론 심지어 그들의 자손들마저 그 어떤 관직도 차지할 수 없었다네. 각 당파는 상대방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질시 어린 우려를 가지고 감시했지......그런 사회는......더 이상 헌정적 국가가 아니며......당을 위한 인간은 파벌꾼이지 시민이 아니며 그들의 소위 권리라고 하는 것은 공허한 말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네.(플라톤의 『Laws』,715) 경쟁하는 야심과 상충하는 이해관계로 얽혀진 이런 권력 쟁탈전에는 불안정과 변화의 원천인 '정치'라는 교..
불트만은 20세기 초 독일 신학계가 역사적 예수 연구와 결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감당했다. 그는 양식비평을 통해서는 역사적 예수 탐구의 불가능성을, 실존주의적 신학에 근거해서는 역사적 예수 연구의 부적절성을 선언했다. 불트만을 정점으로 하는 ‘역사적 예수 연구의 붕괴’라 불리는 기간(1906-1953년)이 있었지만 역사적 예수 연구는 불트만의 회의주의를 딛고 다시 부활해 ‘새로운 탐구’를 거쳐 ‘제3의 탐구’, 혹은 ‘예수 연구’라 불리는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예수-그리스도에 자신의 존재 근거를 두고 있는 그리스도교가 존재하는 한 역사적 예수 연구 는 회피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욕망이자 필요인 것 같다. 그러나 역사적 예수 발견은 완수 가능한 과제인가? 달리 말하면, 진정한 의미에서 불트만을 극복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