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Tags
- 바울
- 바울과 선물
- 기독교페미니즘
- 여우신
- 게르트 타이센
- 바파유
- 엘리자베스 쉬슬러 피오렌자
- 예수
- 돌이 아니라 빵을
- 크로산
- 복음주의
- 양혜원
- 역사적 예수
- 여기 우리들의 신학
- 성서해석
- in memory of her
- 한스 큉
- 러셀 서양철학사
- 조선희 작가
-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 트랜스젠더와 기독교 신앙
- 여성주의성서해석
- 바울과선물
- 피오렌자
- 신학
- 여기우리들의신학
- 이반일리치
- 누가복음
- 김선용
- 청어람
Archives
- Today
- Total
목록오를랑 (1)
여기 우리들의 신학

‘오를랑’을 알게되다: 오를랑의 테크노바디 한 여자가 수술대에 누워 있다. 때로는 여자의 등이, 때로는 여자의 얼굴이 외과의의 매스에 의해 지퍼처럼 주욱 열리고 있다. 여자는 피를 줄줄 흘리면서 큰 소리로 아르토를 읽고 있다. 수술이 끝나자 여자의 얼굴 양쪽엔 징그러운 뿔이 달려 있다. 나는 오를랑의 수술 퍼포먼스를 텅 빈 미술관에서 혼자 보다 말고, 무릎이 탁 꺾인다. 사람들은 여자의 아름다움을 칭송했다. 그러나 여자는 그 찬양의 말이 싫었다. 여자는 밥 먹고 잠 자고 화장하고, 그렇고 그런 일에 바치는 시간을 뺀 일생, 50페이지 짜리 시로 남을 수 있을지 말지 한 일생을 남의 기준에 맞추어 사는 것이 참을 수가 없었다. 문화적 상징들이 새겨지고 연출되는 무대가 된 여자의 몸, 의미 부여를 통해 박제..
글/신나(신학생 나부랭이)의 글
2019. 12. 31. 2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