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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신학의 선구자들 본문

글/신나(신학생 나부랭이)의 글

여성주의 신학의 선구자들

BundleE 2021. 8. 15. 14:44

아주 작은 책인데, 산만한 생각들을 정리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아주 깊이 있는 논의를 진행하지는 않지만 전근대, 근대, 탈근대로의 역사적 변화에 대응하는 가부장적 남성사회의 방식과 여성 억압의 변주되는 형태들을 다루고 있고 그에 맞선 여성들의 지워진 저항의 역사를 복원하고 있다. 전자는 특히 중요해 보이는데, 여성을 통제하려는 시도,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여성의 탓으로 돌리거나 거기서 발생되는 부정적 감정을 여성을 희생양 삼아 해소하려는 시도와 실행이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여성주의 신학의 선구자들』, 테레사 포르카데스 이빌라 저, 김항섭 역, 분도출판사, (2007), 2018. 167쪽

 

비판적 신학의 목표는 두 가지이다. 우리가 물려받은 해석들 중에서 모순을 일으키는 측면들을 명백히 식별하고 ,이러한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신학적으로 일관된 해석적 대안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은 흔히 차별이나 불의의 상황으로 인해 일어나기 때문에, 비판적 신학을 해방신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성주의 신학은 비판신학 또는 해방신학의 한 형태이다. 보통 여성주의 신학 또는 여성주의 신학자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한다.

*모순의 경험: 어떤 사람이(반드시 여자일 필요는 없다) 자신이 속한 믿음 공동체가 여성의 정체성이나 사회적 교회적 기능을 신학적으로 개념화하는 방식이 차별적이거나 부당함을 발견한다.

*개인적 입장 갖기: 바꾸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인식이 아니라 물려받은 신학적 해석의 일부 측면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 결론은 잠정적인 것이고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제도적 입장 갖기: 이 사람이 속한 믿음 공동체의 교의적 완결성에 관심을 갖는 제도는 그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이러한 의미에서 연구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뜻은 아니다. 물론 금지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따라서 여성주의적 남성 신학자나 여성 신학자의 길은 반드시 투쟁의 길이자 권리를 주장하는 길이다. 그렇다고 오로지 투쟁만의 길이자 권리만을 주장하는 길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 활동 자체로부터 나오는 무상의 길, 은총의 길, 놀랄 만한 길, 예기치 않은 선물의 길이기도 하다. 최초의 전망을 더 넓혀 가면서, 가끔 그 전망을 고치기도 하고, 흔히 그 전망에 보다 더 충만한 의미를 부여하는 발견의 길이다. 여성주의 신학의 길은 투쟁의 길이고 무엇보다도 사회적 거부 또는 차별을 겪는 이들의 고통과 기쁨에 연대하고 육화하고 개입하는 길이다...여성주의적 관점은 여성과 남성 어느 쪽이든 복종이나 지배 없이, 자유롭고 호혜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을 전제한다. (20-22, 여성주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우리 시대까지 남아 있는 대부분의 종교적, 법적 체계들은 사실상 여성의 소유권과 교육받을 권리, 남편을 선택하거나 거절할 권리를 부인한다...약혼자/아내의 주체성과 자유는 법 조항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다만 하나의 명백하고 보편적인 예외가 있는데, 바로 간음의 경우. 우리에게 알려진 법전에서 간음 관련 조항은 여성의 온전한 주체성을 인정할 뿐 아니라 여성이 남성보다 죄가 더 많다고, 그러니까 여성이 남성보다 더 자유롭고 자신의 행동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2005년 영국에서 행한 한 조사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으로 구성된 응답자의 1/3은 일반적으로 성폭행을 당하는 여성들에게 잘못이 있다고 곧 여성들이 성폭행(성적 충동)을 유발했다고 응답했다. 간음에 대한 고대 법률이든 현대 영국인 가운데 1/3의 의견이든 거기에 함축되어 있는 전제는 남성성에 대한 공적 담론과 모순된다. 이 두 사례는 남성의 주체성과 자유와 자기 통제력이 강하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26-27, 가부장적 신학과 여성주의 신학)

 

법적 규범은 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신이 우리를 좋아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종교적 믿음을 가진 사회들에서 만들어졌다...4세기의 주교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는 간음에 대한 법률이 부당하게도 여성을 차별한다고 비판했다. 남성들이 자신들의 편의를 좇아 이 법률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29, 가부장적 신학과 여성주의 신학)

 

'여성의 문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여성의 문제'라는 표현은 흔히 남성들에게 여성들이 일종의 문제임(주격 소유격)을 뜻한다. 따라서 여성의 본성은 무엇인가, 사회와 종교에서 여성의 자리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여성들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이와 달리 흔히 여성들에게 여성의 문제라는 표현은 '여성이 문제다'라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문제를 갖고 있다(대격 소유격)는 것을 뜻한다. 여성들에게 여성의 문제는 그녀들을 옥죄는 법률과 관습, 종교 계율이다. 따라서 이 경우 여성들은 각자 하느님이 이해하도록 그녀들에게 부여한 방식으로 역사를 거쳐 오면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았다고 믿는 소명을 실천하려고 할 때, 문제들이 나타나게 된다. (44, 가부장적 신학과 여성주의 신학)

 

19세기 말까지는 고유한 의미의 여성주의가 나타나지 않았을지라도, 이 여성주의와 역사 속에서 여성주의의 토대와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로 끊임없이 등장했던 표현 사이에 존재하는 연속성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곧 여성에 대한 공적 담론과 각 여성의 개인적 경험 사이의 모순을 강조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신학의 경우에도 여성에 대한 신학적 담론과 각 여성의 하느님 체험 사이의 모순을 강조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여성주의가 인본주의인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주의 신학은 신학이다...신학도 인본주의도 여성을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인식과 행동의 주체로 고려하지 않는다면 참된 의미를 가질 수 없다. (48-49, 여성 논쟁과 근대의 탄생)

 

후아나가 아주 효과적으로, 그리고 견고한 신학적 성찰로 당대 가장 저명한 사제의 견해를 무너뜨렸다는 사실은 용납되지 않았다...처음에는 신학적 논의의 형태로 부드럽게 시작된 공격이, 학문 영역에서 후아나 수녀의 주장이 견고하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신학을 이야기하고 남성과 토론하기 위해 올바르지 못한 개인적인 자격 미달, 그녀의 불손함등에 대한 공격으로 옮아갔다. (99, 교회 검열에 대한 투쟁)

 

바시는 28세에 동료 물리학자와 결혼했다. 그녀에게 지혜와 동정녀적 순수성의 이상을 투영하면서 그토록 뜨거운 열정으로 환호했던 칭송가들에게는 이 결혼도 커다란 충격이었다. 바시는 어쩌면 당대의 여성들에게 가능한 유일한 해결책, 곧 아내-어머니의 역할을 떠맡음으로써 순수한 동정녀의 역할로부터 해방되었다. (141, 유럽 최초의 여성 박사들)

 

전근대 문화와 사회에서는 여성의 인간성이 남성 보다 수준이 떨어지고, 따라서 올바른 사회질서를 위해 여성이 모든 영역에서 남성에게 종속되어 살아야 한다고, 심지어 남성은 여성의 삶까지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근대로 오면서 추론하는 능력과 자신의 고유한 기준을 갖는 능력이 사람을 정의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는 여성을 지적 영역에서 열등한 존재로 여겼다. 이전 단계와 다른 점이 있다면 여성을 남성보다 더 종교적인 존재로 간주하는 경향을 띠었다는 것인데, 이런 경향은 분석적, 합리적 능력이 등장하면서 종교가 그 위상을 잃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근대가 강화하는 단계에서, 투쟁은 합리성에서 자유로 옮아갔다. 근대가 절정에 이른 시기에는, 사람의 핵심에 자리하는 것은 더 이상 추론의 능력이 아니라, 사람의 자유와 자율성, 생각하는 바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일 것이다. "실수할지라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다른 이의 명령으로 올바른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인간적으로 여겨질 것이다. 이 단계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덜 자유로운 존재로 특징지어지고 여성은 더 수동적이고 종속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151-152, 마지막 성찰)

 

-1827 난자의 발견이 가져온 혁명적인 인식의 전환,

-1968년 5월은 근대 이념의 헤게모니가 심각한 타격을 입었음을 보여준다.

근대가 여성을 상대적으로 덜 자유로운 존재로 간주했기 때문에 공적 영역에 대한 여성의 접근을 제한하는 경향을 띠었던 것처럼, 탈근대는 여성을 더 사랑이 넘치는 존재로 여기기에 가정의 영역을 책임지는 자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153, 마지막 성찰)

 

우리 주변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덜 존엄하거나 덜 영성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드물다. 위험은 오히려 그 반대의 주장이다. 우리 주변에 반동적이고 환원론적인 보상 운동의 차원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존엄하고 더 영성적이거나 하느님께 가까이 있다고 믿는 자들이 있다. 여성을 합리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고 더 사랑스런 존재라고 여기는 것이다. (155, 마지막 성찰)

 

"경험한 자는 안다. 그러나 설명하는 자는 거짓말을 말한다."(라비아 알-바스리)(156, 마지막 성찰)

 

저자인 테레사 포르카데스 이 빌라는 스페인 몬세라트 베네딕도회 수녀. 1966년 바르셀로나 태생. 공중보건한 박사(바르셀로나 대학교), 신학 박사(카탈루냐 신학대학교), 내과 전문의(누욕 주립대학교) 사목학 석사(하버드 대학교)이다. 공중보건학 박사의 논문 주제는 대체 의학이고 신학 박사의 논문 주제는 페르소나의 개념이다.

 

*간결하고, 지적이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여성 독자에게 empowering한 경험을 제공하는 책! 여우신 페이지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일독을 강력하게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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