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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노동자를 둘러싼 세 가지 계산 중 첫번째 계산 본문

글/신나(신학생 나부랭이)의 글

이민 노동자를 둘러싼 세 가지 계산 중 첫번째 계산

BundleE 2021. 11. 30. 14:36

이민 노동자를 둘러싼 세 가지 계산 중 첫번째 계산

자본주의를 위해서는 이민노동자들은 노동력의 부족을 아주 특별하게 편리한 방식으로 채워 준다. 그들은 주는 대로 임금을 받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전반적인 임금상승을 둔화시킨다...자본주의는 자본의 거의 무한대의 축적을 필요로 하고 이것은 생산성의 무한대의 증가를 요구한다. 그러나 시장이 언제나 생산과 정확히 일치해서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불경기와 경기 신장과 인플레에 이르는 여러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다...불경기 동안에는 치워 두었다가 경기가 확장될 때만 끌어들일 수 있는 예비 노동력이 있어야만 한다. 만약 국내의 조직된 노동계급이 이 예비노동력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똑같이 고통당한다면, 그들은 겅제체제 전체를 끝장내라고 요구하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혁명 프롤레타리아트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비노동력 대부분이 이민노동자로 구성되어 있다면 그들은 필요할 때에는 '수입'을 해올 수 있고 일시적으로 남아돌 경우에는 '수출(귀국시키는 것)'을 할 수가 있으며, 이민노동자들은 정치적인 권리도 없고 정치적인 영향력도 거의 없기 때문에 아무런 정치적인 충격도 받을 필요가 없다. 

이민은 다른 몇 가지 방식에 있어서도 '이상적인' 노동자이다. 그는 시간외 근무를 하는 데도 열성이다. 야근을 하라고 해도 기꺼이 한다. 그는 정치적으로 순진무구한 상태에서 도착한다. 다시 말해서 프롤레타리아로서의 경험이 전혀 없다...이민 중에서 어떤 개인이든 지도자가 되거나 '투쟁적인' 인물이 될 경우에는 즉각적으로, 그리고 쉽게 국외로 추방할 수가 있다. 노동조합들도 그를 옹호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민들은 세금도 내고 사회보장기금도 내지만 그들의 임시 체재 기간 중에 그것으로부터 별로 이득을 얻어 내지는 못한다. 
사회자본에 관한 복지제도에 있어서의 그들의 경비는 최소한도로 유지될 수 있다. 어떤 이민의 가족이 그와 합류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고 따라서 그의 자녀들이 국비로 교육을 받는 일도 없는 것이다. '독신' 남자이기 때문에 그는 노동계급의 주택난도 그다지 심화시키지 않는다...그가 벌어들이는 임금의 1/3을 국외로 송금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송금해 버리는 돈의 절대 부분은 그가 일하고 있는 나라에서 생산된 상품을 사는 데 쓰이고 있다. 

지구 전체로서의 편의점도 있다. 이민노동자들의 고용은 그들의 본국에서의 실직 문제를 상당히 덜어 준다. 만약 북서 유럽에 지금 나가 있는 이민 1천1백만명이 전부 귀국한다면, 그들이 귀국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치적인 상황이 폭발하는 데 이를 것이며, 그때엔 가장 이득을 얻게 될 제국주의 국가가 '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강제로 간섭을 해 올 것이다. 한 스페인 이민노동자의 말: "만약 우리가 오늘 스페인에서 광범위한 사회혁명을 일으킨다면, 내일쯤에는 미국의 간섭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해외에 나와 있는 많은 노동자들의 계산의 일부에는 자기들의 본국에서 사회혁명의 가능성은 점점 더 희박하다는 것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계산의 정치적인 부분이다. 이민노동자들은 가장 천한 노동을 하고 있다...그들은 즉시 그 신분을 알 수 있으며, 개인들로서보다는 하나의 그룹으로(또는 일련의 국가별 그룹으로) 인식된다. 하나의 그룹으로서 그들은 모든 국면에서 가장 밑바닥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현지 출신 노동자들은 다른 그룹을 자기들보다 특권이 적은 집단, 자기들하고는 다른 인간들로 보게 된다. 맑시스트라면 당장에 그들의 차이점은 이차적인 것이며 계급적으로는 같은 이익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지적해 낼 것이다. 이 진실을 인식하는 일은 어떤 혁명운동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바로 그 이론적인 진실이 매일 간과되며 경험에 의해서 위장되고 있기에 이민노동은 자본주의에게 정치적으로 편리하다.

현지 출신 노동자들은 이민들이 '열등한' 위치에 있다고 아무리 애써도 알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다르다고 말한다.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두 가지 특성은 하나로 융합된다. 이민노동자들은 알 수 없는 대상이라는 데서부터 알 만한 가치 이하의 존재들,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하며 질서가 없고 무기력하며 사악한 존재들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그런 다음 '열등한'이란 단어 양쪽에 붙어 있던 인용부호마저 사라지게 되고 이민노동자들의 본질적 열등성의 증거가 곧 그들이 처해 있는 열등한 처지라는 식이 된다. 그가 받는 임금이 곧 그의 인격이 되는 것이다...본질적으로 열등하며 따라서 사회적으로 열등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민노동자들의 존재는 사회적인 계급 조직이 -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 정당하며 불가피한 것이라는 원칙을 재확인시켜 준다. 사회적인 불평등은 결국 자연의 본질적 불평등의 한 표현이라는 부르주아들의 기본적인 주장을 노동계급이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
그렇기 때문에 노동계급이 만약 이민들의 자연적 열등성을 인정한다면 자신들의 요구도 경제적인 요구에 그치는 것으로 축소시켜 버리기 쉽게 되고 자기들 역시 파편들로 단절되어 스스로의 정치적인 동질성을 잃어버리기 쉽게 된다. 현지 출신 노동자가 불평등을 자기 자부심을 유지시키기 위한 원칙으로 받아들일 때에는, 그는 사회가 이미 그에게 부과하고 있는 파편화를 완성시키며 재삼 강조하는 셈이 된다. 

그런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리라는 것이 지배계급의 계산이다. 

존 버거, 장 모르,  <<제7의 인간>>, 차미례 옮김, 서울, 눈빛출판사, 2017, 146-50, 154

두번째 계산은 공신적인 노동조합들의 계산, 세번쨰 계산은 이민노동자 자신의 계산이다. 다음에 차례대로 포스팅 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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