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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텍스트를 읽으며 본문

글/신나(신학생 나부랭이)의 글

공포의 텍스트를 읽으며

BundleE 2022. 4. 10. 12:04
새로 번역되어 나온 필리스 트리블의 『공포의 텍스트』를 읽고 있다. 하갈의 이야기를 읽었는데...뭐랄까 이렇게 피해자 서사로만 읽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사라를 압제자, 여족장 matriarch라고 부르는 것은 수긍이 되지 않는다. 아브라함이 사라에게 순종했다는 표현도 하갈이 이스마엘을 '섬겼다'는 표현도 이상했다.

 

"이 이집트 노예 여성은 이스라엘의 허물로 인해 하나님께 치이고 벌 받고, 고통당한다. 그녀가 상한 것은 사라와 아브라함의 죄악 때문이다. 그녀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그들이 온전하게 된다." (65쪽)
이사야서와의 상호본문성으로 해석한 것인데...와...너무 이상하다. 정말 이렇게 읽는다고? 그래서 하갈이 하나님께 징계를 받았고 그것으로 사라와 아브라함이 온전해 졌다고?? 이런 해석이 가져오는 효과는 뭐지?
난 이스마엘이 하갈 덕에 잘 컸다고 생각하고 아들이 어머니를 사랑하고 존경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는 어머니의 뜻을 따라 이집트 여자를 부인으로 맞았다. 하갈은 자신의 민족 출신을 며느리로 맞이한 것이다. 자유롭게 말이 통하는 이와 노년을 보낸다는 것은 하갈처럼 고향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이방땅에서 노년을 맞이하는 이들에게 작지 않은 기쁨이었을 것이다.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버려졌다고 생각했을까? 하나님이 자신과 자신의 아들을 버렸다고 생각했을까? 여튼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죽었을 때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장례를 동생과 함께 치뤘다. 이스마엘에게서는 억울함과 서운함의 기미가 남아 있지 않았다. 아마도 하갈이 이스마엘을 그렇게 키웠기 때문일거다. 어쩌면 하갈도 억울함과 서운함에 사무쳐 살아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선과 악의 이분법, 가해자와 피해자의 단순한 서사 구조로는 파악되지 않는 인간들 사이의 복잡한 감정과 욕망, 불안과 두려움, 관계의 역동과 삶에 대한 의지 등등이 좀 더 세밀하게 고려된다면 하갈의 삶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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