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우리들의 신학

레위인의 첩 본문

글/신나(신학생 나부랭이)의 글

레위인의 첩

BundleE 2020. 2. 20. 16:13

<레위인의 첩>

 

레위인의 첩은 이름도 목소리도 없는 여성이다. (이 사건이 전개되는 사사기 19장에는 모든 등장인물들이 이름이 없다.) 사사기 19장에 따르면, “에브라임 산악지대 깊숙한 곳에 사는 레위인이 유다 땅 베들레헴에서 한 여자를 첩으로 얻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여자는 부정을 저지른 후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에 있는 자기 친정으로 달아나 넉 달째 머물고 있었다(삿 19:1~2, 쉬운말 성경)”. 그녀가 ‘부정’을 저질렀다 혹은 ‘행음했다’ (개역개정)는 의미가 부정한 성행위를 뜻한다면 아내를 찾아 베들레헴까지 간 레위인의 행동이나, 딸을 다시 받아들인 레위인의 장인이 행동이 다 말이 되지 않는다. 요세푸스는 레위인이 아내의 미모에 반해 아내를 무척 사랑했으나 아내는 그런 남편을 역겨워해서 싸움이 잦았고, 아내는 이 싸움에 지친 나머지 남편에게서 도망쳐 친정으로 갔다고 말한다(요세푸스, p. 315). Exum은 ‘첩 (concubine)’이라는 단어가 이 여인이 법적인 지위를 가지지 못한 것 같은 인상을 주는데 반해, 히브리어 ‘피레게쉬’는 2번째 지위를 가진 법적인 아내를 가리킨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현대 독자들에게 부정적 이미지들을 불러일으키는 ‘첩’이라는 번역 또한 부적절하다.

 

부인과 함께 베들레헴을 떠나 해가 질 때쯤 그는 베냐민 사람들의 성읍인 기브아로 가고, 그곳에서 에브라임 출신의 (자신도 타향살이 중인) 한 노인의 집에서 묵게된다. 노인의 집에 들어가 쉬고 있는데, 성읍의 불량배들이 와서 그의 손님으로 머무는 사람을 ‘알고자 하니’ 데리고 나오라고 한다. 쉬운말 성경은 ‘그 사람을 강간해야겠소’라고 번역한다. 그런데 이제부터의 대화가 좀 이상하다. 집주인은 “이것보시오. 그런 짓들은 제발 하지 마시오. 우리 집에 찾아온 손님인데,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이오? 그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잖소. 우리 집에 내 처녀 딸도 있고, 그 사람의 첩도 있소. 그들을 여러분에게 데려다 줄 테니, 당신들 좋을 대로 하구려. 하지만 이 사람은 안 되오. 이 사람에게는 제발 못된 짓을 하지 마시오 (삿 19:22~24, 쉬운말 성경).” 이 본문은 여성이 ‘인격체’가 아닌 자궁이라는 신체로 전락했음을 드러낸다. 윤리적 기준과 가치관이 무너지고 폭력과 불법이 자행되는 시대에 여성이 빠른 속도로 남성의 욕구 충족과 목적 성취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것은 역사 내내 목격되는 현상이다.

 

노인의 딸이 아니라 이 유대 여자만 집 밖으로 내보낸 것은 아마도 노인이 아니라 남편인 레위인이었을 것이다. 자신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며 베들레헴까지 찾아왔던 이 레위 남편이 자기 딸을 내보내려는 노인의 ‘호의(!)’를 마다하고 자기 첩을 내보낸 것 같다. 레위인을 원했던 불량배들은 대신 그의 아내를 넘겨받고는 “그녀를 밤새도록 교대로 겁탈하고, 새벽녘에야 놓아 주었다. 날이 샐 때가 되어서야, 여자는 겨우 남편이 묵고 있는 짚 앞에까지 와서 쓰러졌다. 그러고는 날이 환히 밝을 때까지 거기에 누워 있었다. 레위인 남편이 길을 떠나려고 집을 나와보니, 자기 첩이 두 손으로 문빗장을 잡은 채 쓰러져 있는 게 아닌가! (삿 19: 25~27, 쉬운말 성경)” 이 본문에서 사사기 화자는 이 장면을 담담하게 그러나 매우 상세하게 묘사한다. 레위인은 분명 자신의 아내가 어떤 일을 당할 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여장을 챙겨 집을 나설 때까지 그녀의 안위를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집 앞에 와서 쓰러져 날이 환히 밝을 때까지 거기에 누워있었다. 쓰러져 있는 그녀에게 레위인은 태연하게 말한다. “일어나 가자”. 사사기 저자는 이 유대인 여자의 정확한 사망 시점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녀는 길 위에서 죽었을까? 그가 그녀의 몸을 12조각으로 자른 것은 사망 이후였을까? 알 수 없다. 밤새 윤간당하고 죽을 지경이 된 채 문 앞에 쓰러진 자신의 아내를 발견하고도 태연자약했던 이 레위인은 갑자기 정의에 불타는 자의 코스프레를 하며 온 이스라엘을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의 전쟁으로 몰아넣는다.

 

요세푸스는 이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재구성한다. 불량배들은 처음부터 미모의 아내를 원했고 그들이 강제로 그녀를 납치해 강간했다. 그녀는 노인의 집을 찾아왔으나 부끄러워 감히 남편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남편이 자기를 용서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 그만 쓰러져 죽고 말았다. 레위인은 그녀를 위로하고자 했으나 그녀가 죽은 것을 발견했다. 요세푸스의 목소리로 이 이야기를 들으면 레위인은 꽤 괜찮은 인물이 된다. 요세푸스와 비교해서 읽을 때 구약 성서의 사사기 저자는 레위인의 행위를 남성 중심주의적 이해로 재구성하지 않고 이 자의 잔혹하고 무감각하고 비정상적인 행위의 전반을 솔직하게 이야기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동일한 본문에 대한 남성주의 해석은 어떨까? (신뢰할만하지 않지만 전형적이라는 이유에서 박재갑의 책을 인용한다.) 박재갑은 레위인의 무죄함을 변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는 이 사단의 원인이 유대인 여자에게, 그리고 그녀를 잘못 가르치고 또 지나친 환대로 레위인을 지체시킨 그녀의 부모에게 있다고 말한다. “행음한 첩은 자신의 소원대로 실컷 행음을 당하다가 죽었다. 그녀가 고통으로 죽었는지, 수치심으로 죽었는지 모르겠다(박재갑, 2014, p. 161, 164).”라는 그의 해설(?!)에서 남성중심주의적 성경읽기와 해석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는지 볼 수 있다(극단적으로 나쁜 경우이긴 하다).

 

사사기의 저자가 ‘행음’이라는 단어를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지, 문맥안에서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와 고찰은 없다. 남성중심적 해석은 내러티브 초입의 ‘첩’ 거기다 ‘행음한 첩’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이미 그녀가 죽어 마땅한 존재라는 판결을 내린다. 추잡하고 난잡한 여자는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았고 그녀의 말은 들어볼 필요도 없다. 사사기 저자는 이 유대인 여자에게 목소리를 주지 않았다. 그런데, 남성주의적 성경해석자들은 사사기 저자보다 더 무식하고 잔인한 방식으로 그녀의 인간됨을 제거해버린다. ’자기 소원대로 실컷 행음을 당하다가 죽었다’는 해석은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폭력이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닌 그녀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성폭력 가해자들과 그들을 옹호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기분 탓일까?

 

펜찬스키(Penchansky 1992:83)는 이렇게 묻는다: “이 본문은 교묘하게 여권주의적인 시각을 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전적으로 반여권주의적인 쟁점을 다루면서 여성차별주의적인 일반 논리를 반영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여권주의적인 시각과 전혀 무관한 것일까?” 펜찬스키의 이 질문은 이 ‘유대인 여자 본문’ 자체는 얼마든지 다양한 시각으로 읽힐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사사기의 마지막에 동족을 멸하는 모호한 명분의 전쟁에서 베냐민 여자들이 다 멸절해 발생된 문제(벤야민 지파가 결혼한 여성이 없음)에 대해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내놓은 대책:명절에 춤추러 나온 실로의 여자들을 납치하고 강간하라. 인류의 역사의 전쟁 때마다, 혼란의 장소마다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무차별적 성폭력과 성착취에 대해 성경은 모호하지 않다. “그 때에 이스라엘 왕(여호와 하나님)이 없으므로 사람이 자기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더라”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 요세푸스 1: 유대고대사 (창세기부터 고레스 원년까지)>> ,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87

 

박재갑, << 오아시스 성경강해(구약6), 가나안 정복과 사사시대>> , 서울, 좋은 땅, 2014

 

Penchansky, 1992: 83 (빅터 해밀턴, 2005, p.219 에서 재인용)

 

빅터 해밀턴, << 역사서 개론 >>, 고양,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5

 

Penchansky, D. 1992. “Staying the Night: Intertextuality in Genesis and Judges.” in Reading Between Texts: Intertextuality and the Hebrew Bible, Ed D.N. Fewell, Louisville:Westminster/John Knox, Pp. 77~88.

 

J. Cheryl Exum, “Feminist Criticism: Whose Interests Are Being Served?” Judges and Method: New Approaches in Biblical Studies, edited by Gale A. Yee, 65~90,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5

 

<사시기에 나타난 이름있는 여인들과 이름없는 여인들에 관한 소논문> 중��

 

이미지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The_Levite_of_Ephraim_by_A.F.Caminafe_(1837,_Lyon).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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