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우리들의 신학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하라 본문

글/신나(신학생 나부랭이)의 글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하라

BundleE 2020. 6. 22. 15:54

신명기 22: 5 여자는 남자의 옷을 입지 말고, 남자는 여자의 옷을 입지 마십시오.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이렇게 하는 사람을 싫어하십니다.

 

신실한 트랜스젠더들에게는 곤혹스러운 본문. 그들은 자신들이 성서의 가르침을 어기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종교 귄위자들은 이 구절을 사용해서 트랜스젠더들을 단죄했다.

 

그(랍비)는 나에게 구약성서를 인용해서 “여자는 남자의 옷을 입지 말고, 남자는 여자의 옷을 입지 마십시오”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내가 남자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주님의 눈에는 네가 남자이고 항상 남자일 것이다”라고 했다. 자신이 항상 여자라고 알고 있었던 소년이 평생 겪은 고통에 대한 공감 없이 단지 율법주의적 개소리였다.

 

⟪트랜스젠더와 기독교 신앙⟫, 저스틴 타니스 지음, 김준오 옮김, 고양, 무지개신학연구소, 2019: 127-8

 

-

 

이사야 56:1-5

 

“자신의 내면적인 실체가 육체와 갈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느끼는 트랜스젠더들에게, 이사야 예언자는 우리의 몸의 특수성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신실함에 초점을 맞추는 말씀을 선포한다. 하나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우리의 몸이 어디에서 왔거나 그 몸이 어떻게 바뀌었는가가 아니라, 우리의 신앙을 실천하는 방식들이다. 정의, 포용, 신실함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용납하실 수 있는 사람들의 일차적인 특징이 된다.”

 

⟪트랜스젠더와 기독교 신앙⟫, 저스틴 타니스 지음, 김준오 옮김, 고양, 무지개신학연구소, 2019:140

 

-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하라. 하나님은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고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하신다.>

 

사회적으로 규정된 정체성, 지위, 관계를 다 벗어버리고 벌거벗은 채 서 있는 나를 인정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 처럼 느껴진다. 그나마 얼기 설기, 서툴게나마 걸쳐입은 옷 덕분에 그럴 듯하게 보이던 내가 벌거벗게 되면...거기엔 내가 미워하고 혐오하는 그런 존재가 있지 않을까? 그런데 아마도 그것이 하이데거가 말하는 진정한 ‘자기’인 것 같다. 세상이 말해주고 부여하는 그런 자기가 아닌 나라고 믿고 있는 내가 아닌...양심에 의해 불러세워지는 그 곳에서 만나는 무와 같은 존재. 참으로 당혹스러운 경험이 아닌가! 선생님은 그런 아무 것도 아닌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경험 후의 인간은 아주 다른 존재라고 말씀하셨다. 엄청난 내적 힘을 가지게 되는 존재.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부름이라고도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아무 것도 아닌 나를 부르시고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 아무 것도 아닌 나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런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기대어 나는 나를 수용할 수 있다고. 이런 경험을 통해 나는 하나님과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신뢰관계를 쌓게 될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내가 긍정할 수 없는 나를 수용하시고 수용하게 하시는 하나님. 이 경험은 다른 이들도 그들이 가진 무엇이 아니라 그들 자체로 수용하고 사랑하게 하는 힘을 가지게 한다.

 

어디서 들어봤음직한 이런 말들이 이토록 신선하고도 은혜롭게 들리는 것은 하이데거의 언어때문인가, 선생님의 내공 덕인가, 나의 현실로 인함인가?

 

이런 경험은 종교적으로 아주 고급 단계이기 때문에, 아마도 이 단계의 종교 경험에 성공한 이들은 탁월한 영적 수준에 도달한 이들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종교 안에서 그런 존재가 되기를 꿈꾼다. 우리와 타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수용력을 지닌 존재. 이것은 기독교가 긍정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하라. 하나님은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고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하신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고통과 공포인 사람들 가운데 이 말이 선포되어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 아닌가!

 

“나는 훨씬 많은 기도를 드렸다. 나는 다시 확신을 필요로 했으며 심지어 내 인생에서 다른 이들이 내가 잘못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 때조차도, 항상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피난처와 사랑을 얻었고 또한 내가 귀중하다는 것과 내가 실수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나는 계속해서 내가 왜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이유가 있다는 것과 그 이유에 대해 내가 정직한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들었다. 영적인 피난처가 없는 이들이 어떻게 성전환의 스트레스를 다룰 수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들은 매우 용감한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나는 하나님의 치마 속에서 피난처를 찾는 겁쟁이였다.”

 

⟪트랜스젠더와 기독교 신앙⟫, 저스틴 타니스 지음, 김준오 옮김, 고양, 무지개신학연구소, 2019, 228-229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긍정하는 것의 힘은 일상과 세상에서 자신의 삶을 긍정받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영적 경험을 제공한다. 영적으로 그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훨씬 더 깊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사랑을 경험하며 그 사랑 안에서만 자신들의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영적 빈혈에 시달리고 있는 많은 교회 공동체에 그들이 가져올 수 있는 영적 자원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 교회가 그들에게 무엇을 해주는 것 이상으로 그들이 교회에 해줄 수 있는 것이 많다는 사실.

 

여기 우리들의 신학 팟캐스트

팟빵 : podbbang.com/ch/1769565

네이버 오디오클립 : audioclip.naver.com/channels/2453

팟티 : podty.me/cast/194201

iTunes : bit.ly/theoyws

 

'구독'과 '좋아요'와 '댓글'은 언제나 환영해요.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