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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들의 신학
성서본문이 여성을 위하고 있다고 말할 때 더 정신을 차려야한다 본문
"(데리다에 따르면) 의미를 하나로 고정시키는 태도는 획일화하는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다. 의미의 미결정성이 함축하는 유연함과 탄력성에 기존 상징계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태혜숙,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여이연, 2001, 24쪽
성서의 텍스트를 해석할 때 정통적이라 주장되어 온 하나의 의미를 고정시키기 위한 해석의 변주(종종 여성주의적 해석인 듯한 옷을 입는다)
와
텍스트가 제공하는 의미의 미결정성의 충분한 공간, 그 안에서 유연함과 탄력성에근거해 기존 상징계에 도전하고 변화를 추구하는 해석
둘 사이에서 헷갈릴 때가 많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 성서본문이 여성을 위하고 있다고 말할 때 더 정신을 차려야한다. 그런 본문이 전혀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해석이 기존의 상징계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을 누그러뜨리고 타협하고 안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 발자욱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음을 자각하지 못한 채 여기가 이전보다 나아졌다고 믿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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