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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인 믹스의 1세기 기독교와 도시 문화 본문

글/신나(신학생 나부랭이)의 글

웨인 믹스의 1세기 기독교와 도시 문화

BundleE 2021. 10. 7. 10:39

다들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필독서는 몸을 사리게 된다. 어려울 것 같아서. 그러나 한 편으로는 알고 있다. 언젠가 꼭 읽어야 한다는 것을.

책장에 모셔두었던 『1세기 기독교와 도시 문화』를 읽었다. 예상한 것 보다는 어렵지 않았으나 방대한 자료들과 성서를 다루고 있고 바울 서신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지 않아서 서신을 근거로 전개하는 논지는 저자에게 끌려가게 된 것 같다. 한 번 읽고 이 책은 이런 것이다 쓸 수 있는 실력은 물론 아니고. 방송을 하자면 한 번은 더 읽어보아야 할 듯 하다.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접근은 바울 언어의 사회적 기능이었다. 예를 들어 '묵시'의 기원이 조로아스터교인가 유대교인가, 제사장 문서인가 서기관 문서인가, 묵시와 종말의 의미(defined meaning)는 무엇인가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믹스는 바울의 묵시적 언어가 바울 공동체에서 어떤 사회적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발화되었는가를 논구한다. "믿음 패턴과 사회화 패턴의 상관관계"(442) 내겐 이게 믹스 주장의 핵심으로 보인다. "공동체 내적 갈등 해결과 결속의 강화. 더 큰 외부 세계와의 관계" 신약 문헌의 저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과제. 내 생각엔 (바울), 바울의 제자들과 누가-행전은 이걸 풀어가는 방식에 비슷한 점이 있고, 요한복음과 계시록은 아주 다른 방향을 선택하는 것 같다. (쓰고나니 내 생각인가 싶네...)

믹스가 바울공동체를 일반화 혹은 균질화해서 접근한다는 비판을 접하고 읽어서인지 그 부분이 눈에 띄었다(404). 근자에 출판된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와 좀 다른 주장도 있었다. 아마도 이 책 이후에 활발해진 사회사적 연구의 수혜를 내가 알게 모르게 받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여튼 전반적으로 저자가 던지는 질문들이 내가 누가-행전에서 제기하고 싶은 문제를 구체화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해서 너무 많은 질문들이 있어서 당황했다. 응?? 선생님 지금 제게 물어보시는 거예요? 답은 안주시고요? 수사적 질문인데 내가 무식해서 이해를 못하는 것일까? 내동 머글님이 좋아하는 '건조한'문체를 유지하시던 저자가 갑자기 '불안', '외로움', '반가운 쉼터', '애정을 느끼는', '감성충만한 언어와 따뜻하게 돌보시는 하나님 이미지' (444-5)와 같은 감성적 언어들을 쏟아내셔서 또 당황.

"교회도 다양한 사회적 지위를 지닌 구성원들이 모인 복합체였다. 교회 구성원들이 이전에 서로 맺었던 그리고 교회 밖에서는 여전히 맺고 있는 여러 유형의 관계 - 주인과 노예, 부자와 빈자, 노예 출신 자유인과 후견인, 남성과 여성 등 - 는 세례 의식과 주의 만찬을 통해 경축한 '코뮤니타스'와 긴장관계를 나타냈다. 이런 역할들이 나타내는 익숙한 위계 구조 그리고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카리스마를 통해 특별함을 부여하시는 성령의 자유 사이에도 긴장이 존재했다. 따라서 우리는 통일과 평등과 사랑을 표현하는 상징 뿐 아니라 유동성과 다양성, 개별성을 표현하는 상관관계적 상징도 강조하는 모습을 바울서신에서 발견한다."(445)

디게 멋진 문장이고 중요한 말인 것 같은데, 마지막 문장이 잘 이해가 안간다. 그러니까 통일, 평등, 사랑이 강조되는 한 편 공동체와 사회의 위계적 현실에 순응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존재한다는 말인가? 유동성, 다양성, 개별성...이 무슨 말이지? 아시는 분?!

훌륭하게 번역해 주신 박규태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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