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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게 하기 본문
쉬클로프스키는 반복된 행위로 인해 사물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는 것을 "습관화" 혹은 "자동화"라고 부른다. 그에 의하면 습관화는 우리의 "노동, 옷, 가구, 부인, 전쟁에 대한 공포"등 모든 것을 무감각의 무덤으로 삼켜버린다. 아무리 좋은 물건도, 아무리 새로운 사람도, 사건도, 자꾸 반복되다 보면 그것을 느낄 수 없게 되고, 그것들을 느낄 수 없을 때, 그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를 바 없게 되는 것이다. 습관화, 자동화가 사물을 죽이는 바로 이 지점, 이 자리에서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말하는 예술의 기능, 필요가 탄생된다. 쉬클로프스키에 의하면 예술의 존재 이유는 삶에 대해 잃어버린 감각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 예술은 "우리로 하여금 사물을 느끼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다시 말해, 너무나 친숙해서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물을 다시 느끼게 해주는 것이 예술이라는 것이다. 쉬클로프스키는 예술의 이러한 기능을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 혹은 estrangement)"라고 명명한다. 다음은 낯설게 하기에 대한 쉬클로프스키의 그 유명한 정의이다.
예술의 목적은 사물들의 감각을, 통상 알려진 대로가 아니라 지각된 방식으로 부여하는 것이다. 예술의 기법은 '낯설게' 만드는 것이고, 형식을 난해하게 하는 것이며, 지각(perception)의 난이도와 그것에 걸리는 시간을 증대시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각의 과정, 그 자체가 미적 목적이고 따라서 그것은 연장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오민석, 『현대문학이론의 길잡이』, 단양: 문학의 전당, 2017, 52-53.
습관화/자동화는 모든 것을 무감각의 무덤으로 삼켜버린다. 하나님, 예수님, 그리고 성서가 무감각의 무덤으로 삼켜져 버렸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반복되다 보면 느낄 수 없게 되고, 느낄 수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습관화, 자동화가 신과, 신앙과, 경전을 죽이는 지점...이 자리에서 신학, 성서학의 기능, 필요가 탄생된다.
오...말되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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