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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종교철학을 읽고 본문

글/신나(신학생 나부랭이)의 글

페미니스트 종교철학을 읽고

BundleE 2023. 8. 21. 21:47
*에라스무스에서 <브릿지총서>로 출판되는 <페미니스트 종교철학>(낸시 프랭큰베리 지음, 이민희 옮김)을 먼저 읽을 기회를 주셨어요. 감사합니다.
우선 고백하자면, 나는 ‘페미니즘, 종교, 철학’ 이 세 영역 모두에 대해 개론서 두어권 읽은 게 다이고 어느 것도 제대로 아는 것은 없다. 그런데 <페미니스트 종교철학>이라니! 읽기 전부터 제목에 제대로 주눅이 들었고, 예상대로 나 같은 독자에게 이 논문은 이해하기 상당히 까다로운 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성서와 세계를 보려고 할 때 부딪히는 현실들과 연결되어 읽히는 부분이 꽤 많았고 그래서 몇번의 ‘아하!’ 모먼트가 있었는데 여기서는 그걸 공유해보려 한다.
아하 #1. 6월 초에 듀크대 신약학자인 더글러스 캠벨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바울학자인 캠벨은 바울의 사상과 공동체 설립의 행위에서 도출되는 바울의 윤리는 ‘포용’과 ‘관계성’의 윤리로 교회 안에 다양성(혹은 다양한 형태/구조들)을 허용/장려한다고 주장했다. 일단 복음 안에 수용된 다양한 구조들은 관계성의 기준으로 평가를 받아 적절하게 걸러지고 재형성되는데 관계성 윤리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사라진 구조들(structures) 중 하나가 노예제라고 말했다.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지금부터) 그는 바울의 가부장적 언어 사용을 의식해서인지(아니면 이게 진짜 중요한 아젠다라고 생각했는지??) 바울의 아버지-아들 용어는 창세기의 아브라함-이삭의 관계를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투사한 상호본문적 용어이지 생물학적 용어가 아님을 말하기 위해 한 단락을 썼다. 캠벨에 따르면 바울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같은 아버지이고 예수가 이삭과 같은 아들임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바울에게 아버지와 아들의 용어는 젠더 범주를 초월하는 용어라고 했다. ‘관계성 윤리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사라져야 하지만 사라지지 않은 구조들’ 중 하나인 가부장제에 대해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매우 궁금했고 아버지-아들 용어가 젠더 범주를 초월하는 ‘일반적’ 개념이라고 할 때 그것이 가부장제 약화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묻고 싶었는데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낸시 프랭큰베리는 ‘3.신의 문제’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다음의 문장이 내 속을 뻥 뚫어주었다. “페미니스트 저자들은 수사학적으로 보류하는 방편에 기대 성차별 언어를 피하길 바라는 작가들의 문학적인 태도에 비판적이고, 신의 개념이 젠더를 초월하므로 “그분(he)은 문자 그대로 남성이 아니라는 선언과 이어서 모든 게 이전처럼 지속될 수 있다는 가정은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일단 남성성이 젠더를 넘어 보편적 인간으로 끌어올려지면, 여성성이 져야 할 성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문제는 더욱 악화된다(이 논문의 15쪽).”
아하 #2. 출석하고 있는 교회가 얼마전 주기도문에서 ‘아버지’를 뺄 것인지 아니면 남겨두고 읽지는 않을 것인지 아니면 성서 본문을 존중해서 남겨두고 읽을 것인지 투표를 진행했다. (이런 논의와 투표를 한다는 것 자체는 우리 교회가 꽤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편임을 보여준다.) 나는 아버지라는 단어가 어머니 하나님을 상상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의견을 냈지만 투표 결과 한 표 차이로 아버지를 남겨두기로 했다. 이 안을 지지한 성도는 우리는 예배 시 아버지를 읽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으며 교회 홈페이지에도 올라가는 주기도문에서 ‘아버지’를 빼면 이단으로 오해를 받을 염려가 있어 교회의 성장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이 말을 곱씹으며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과 고민을 여러 측면에서 반영하는 의견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전혀 다른 예배를 상상하지 못하는(혹은 상상할 수 없는) 한계도 동시에 느꼈다. 낸시 프랭큰베리는 이렇게 말한다. “예를 들어 종교 언어의 문제는 은유와 모델의 의미와 사용의 측면에서 자주 제기되며, 참고 및 진리에 관한 질문을 수반한다. 그러나 주로 종교철학자들이 활용하는 은유와 모델은 본질적으로 위계적인 관계 양상에 비판 없이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아버지, 왕, 주, 신랑, 남편, 하나님과 같은 은유들에 대해 “그”라는 대명사를 사용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넘어간다. 만일 이렇게 한 가지 성만 통용되는 사회에 간혹 여성이 등장하는 모델이나 은유가 침입하면 그때는 즉각 두드러진다. 신에 대해 여성 대명사, 즉 “그녀”가 등장하면, 대다수 강의실에는 신경질적인 웃음이 흐른다(이 논문의 16쪽).”
아하 #3. <여성주의성서해석> 모임에서 구원자, 그리스도가 남성으로 젠더화되는 것이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어떤 여성 참여자 분이 남성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사랑을 고백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며 이런 점에서 남성으로 젠더화된 그리스도가 여성에게 유리한 면도 있다는 의견을 말했다. 이런 측면을 한번도 생각을 해본적이 없어 적잖이 당황했다. 낸시 프랭큰베리에 따르면 “페미니즘 연구에서 남 신성이 남성성 개념에 특정 딜레마와 긴장을 유발하는지, 그 의미를 불안정하게 바꾸는지 여부는 고려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41쪽)” 남근을 가진 남성 신격을 상상하는 종교체계에는 남성성에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하는 데, 그 중 하나가 이성적 상보성에 기반한 문화에서 남성들이 남성 신을 숭배할 때 겪게 되는 동성에로스적 욕망의 딜레마라고 한다.(41쪽) “페미니스트 종교철학은 어떻게 남성 신이 남성들의 자아 개념에 문제를 일으키는지의 질문을 아직 충분히 탐구하지 못했다.(42쪽)” 젠더화된 신 개념이 여성 뿐 아니라 남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야 건설적 대안을 함께 도출할 수 있다는 당연한 생각을 여태껏 하지 못했다.
이런 아하 모먼트 이외 받은 인상: 짧은 글에서 페미니즘 종교철학의 지도를 보기 쉽게 그려주었고 페미니즘 종교철학에서 논쟁이 되는 주제들과 방법론을 망라하면서 이 분야에 접근하기 위해 읽어야 할 학자들을 친절히 알려준다. 미처 해명되지 못한 불편함을 명료하게 하고 의견을 언어화하며 여성주의 성서해석에서도 유용한 개념과 주의할 점을 배우는데 ‘페미니스트 종교철학’ 공부가 유익함을 깨달았다.
**이런 수준의 논문을 원문으로 읽으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 뿐더러, 누군가의 소개가 없이는 접근하기 어렵다. 에라스무스에서 이런 작업을 해 주셔서 무척 감사하다. 오늘까지 후원 신청을 하면 <페미니스트 종교 철학> 포함 브릿지 총서 첫 두 권(<에마뉘엘 레비나스>)을 받아볼 수 있고, 발간된 <브릿지 총서>에 대한 해설 강좌(우어!!!)도 후원자들은 무료로 참석할 수 있다니...여러분! 오늘!! 후원하시라!! 서두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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