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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들의 신학
에스겔서와 여성주의적 성서해석학 본문
H는 이번 학기 에스겔서 수업의 논문을 16장으로 해보겠다고 했다. 에스겔서 16장이 히브리어 중급 기말고사 범위였던 나는 16장을 몇 번이고 읽고 외우고 해석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H는 16장을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읽어보기를 희망했다. 나는 H의 계획이 무척 반가웠다. 교수님은 16장에 등장하는 탯줄도 수습되지 않은 채 핏덩이로 버려진 여자아이를 여성 개인이 아니라 예루살렘으로 읽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시험범위에 해당하는 1~20절 본문의 히브리어 해석을 마칠 때마다 속이 울컥거려서 화장실로 달려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에스겔의 표현이 적나라해 질수록 교수님은 에스겔을 변호하셨다. “에스겔이 하고 싶은 말은 그러니까......”
에스겔 16:1-20의 내용은 그러니까...하나님이 가여운 아기를 발견하고 살뜰하게 목욕시키고 기름을 발라준 후 이 아이가 자라는 것을 지켜보았는데 그녀의 유방이 뚜렷해지고 머리카락이 길어지도록 그녀는 벌거벗고 있었다. 그때 하나님은 나체의 그녀에게 다가가 벌거벗은 몸을 자신의 옷으로 덮고(이 표현은 룻이 보아스의 천막에 들어갔던 것과 같은 표현으로 성관계를 암시한다) 그녀와 언약을 맺고 부부가 된다. 하나님은 그녀에게 온갖 좋은 것을 다 주었고, 그녀는 왕족의 자리에 맞먹도록 성공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미모를 무기로 지나가는 온갖 남성들을 유혹하여 음행을 하고(그들을 향해 다리를 벌리고 있다고 히브리어는 표현한다) 그들을 기쁘게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온갖 좋은 것들을 갖다 바친다. 그러고도 그녀의 음욕은 채워지지 않는다. 그녀가 그런 행위들을 하고 돌아다니는 것을 거룩한 남편은 면밀히 지켜보며 상세하게 고발한다.
이 본문을 은유로 보아야 한다고 교수님은 당부하셨지만, 나는 이 본문을 그렇게 읽을 수가 없었다. 이 본문에서 그려지는 여성의 행위와 특성은 이 본문에만 한정되지 않고 타자화된 여성을 정형화(stereotyping) 하는 역할을 한다 (그녀의 이름 없음이 ‘보편화’를 더 쉽게 만드는 것 같다). 여기서 나타나는 나이 많은 남성과 어린 여성의 관계 또한 하나의 정형으로 우리의 관념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이건 전형적인 ‘그루밍’ 아닌가? 여기서 ‘롤리타’ 남자주인공의 역겨운 성적욕망이 떠오른 것은 내가 음란마귀이기 때문인가? 이렇게 말하면...신성모독인가?
H 또한 자신의 논문에서 이런 부분을 들여다보기를 원했다. 그러나 한 달을 넘게 씨름하고 나서 H는 이 본문을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다루기 위해 필요한 자료들을 거의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교수님께서 추천해 주신 참고도서 중 이런 관점을 가진 자료는 없었고, 관련 논문을 찾는 것도 어려웠다. 번역된 주석 중 페미니즘적 관점을 반영한 책은 거의 없다. 몇몇 단행본들이 있지만, 특정 본문에 대한 논문을 쓸 정도의 깊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영어권(아마도 독어권)에서는 이런 작업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런 자료들은 소개받기도 쉽지 않고(존재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언어 장벽으로 인해 접근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H는 결국 여성주의적 관점의 논문쓰기는 포기했다고 했다.
어째서 이런 주석들과 연구자료들에 대한 발굴과 번역과 출판은 이리도 더딘 것일까? 기독교 출판계에 종사하시는 분들 중에 여성주의 성서 해석학에 관심을 가지신 분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있더라도 시장이 너무 작은 것이 문제일까?
몇 달 전 교회에서 설교자가 ‘성경의 여성’이라는 주제로 4주에 걸쳐 여성주의 기획 설교를 했다(그가 그렇게 명명했다). 그가 룻에 대해 했던 설교는 대충 다음과 같았다. 그는 보통 다른 목사들은 ‘보아스를 그리스도’라고 해석(남성주의적 해석)하지만 자신은 ‘룻이 그리스도’라고 보는데 이런 점에서 자신의 것은 여성주의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룻을 그리스도로 만들기 위해 나오미는 무력하고 악질적인 늙은 노파가 되어야 했다. 그의 설교에서 나오미는 자신의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며느리를 보아스의 발 밑에 밀어넣은(성행위를 의미) 늙은 여인인 반면, 룻은 그녀의 말에 순종하는 동시에 그녀를 구원하는 젊고 매력적인 여인이다. 이런 대립 구도에서만 룻은 (모두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나오미의) ‘그리스도’가 된다. 그의 설교를 들으면서 룻을 그리스도라고 명명하는 것이 (여성에게) 그렇게 중한 일인지, 만약 이 해석에서 룻과 자신을 동일시한 여성이 있다면 그들이 얻게되는 함의는 무엇인지 생각했다. 글쎄...늙으면 안된다...추해지니까? 시어머니는 이래서 상종하면 안된다?... ‘여성주의’ 해석이 남성 설교자에게도 시도해보고 싶은 매력적인 어떤 것인가보다라는 생각... 그러나 이 경우에서처럼 ‘여성주의적 해석’이라는 말 자체에 대한 이해 부족과 여성주의적 설교를 위한 자료의 부재는 전혀 여성주의적이지 않은 오히려 반여성주의적 해석을 낳는다.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서술한 성서 주석에 대한 관심과 수요는 점점 커질 것이다. 많은 이들이 신선한 해석과 설교를 찾고 있고, 페미니즘에 대한 높아진 세속적 관심과 함께 교회 대중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교회를 변화시키기를 열망하는 (출판사) 관계자 여러분! 이런 책 좀 출판해 주십시오!!
페미니즘적 성서해석을 전면에 내세운 Wisdom Commentary Series. 성경 전권에 대한 주석 출판을 목표로 한 권씩 꾸준히 출판되고 있다. 출판된 책부터 번역 작업을 거쳐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나는 레위기 논문을 쓰기 위해 이 주석을 참고했었는데, 내용이 전체적으로 무척 성실하며 몇몇 본문에 대해서는 확실히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고, 각주를 통해 페미니즘 해석의 관련 자료들도 풍부하게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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