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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들의 신학
삶다운 삶 본문
καὶ φυλάξεσθε πάντα τὰ προστάγματά μου καὶ πάντα τὰ κρίματά μου καὶ ποιήσετε αὐτά ἃ ποιήσας ἄνθρωπος ζήσεται ἐν αὐτοῖς ἐγὼ κύριος ὁ θεὸς ὑμῶν (Lev. 18:5 BGT)
나의 프로스타그마타(규례) 와 크리마타(법도) 를 지키고 그것을 행하라. 그것들을 행하는 사람은 그것들 안에서 살리라.
ὁ δὲ νόμος οὐκ ἔστιν ἐκ πίστεως, ἀλλ᾽ ὁ ποιήσας αὐτὰ ζήσεται ἐν αὐτοῖς. (Gal. 3:12 NA27)
율법은 믿음으로 부터 나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행하는 사람은 그것들 안에서 살리라.
*갈라디아서에서 ζαω는 “하나님 앞에서 생명을 얻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해 special quality를 가지게 되는 것이 ζαω ‘살다'. “사는게 사는게 아니다”라는 말은 우리가 “산다”는 단어에서 생물학적 생존과는 전혀 다른 어떤 것을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삶다운 삶이라는 것이 뭔지는 시대마다 사회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바울에게 삶다운 삶은 하나님 앞에서 의미있는 삶이었다.
레위기 18:5의 ζαω도 그러하다. 이것 역시 하나님 앞에서의 quality life 를 가리킨다. 팔레스타인 타르굼은 레위기 18:5의 생명을 “영생”, “영원의 삶”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이 자신의 삶의 발걸음을 토라와 맞추어 걸을 때 얻어진다.
율법이 믿음으로 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는 바울의 주장을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시내산에서 야웨와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이 믿음에 기반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억지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표현은 수사적 목적을 가진다고 봐야 할 것이다. 눈길이 가는 것은 문장의 후반부. “이것을 행하는 자는 그것 안에서 하나님 앞에 생명을 얻으리라” 이런 표현을 레위기의 문맥에서 해석하면 바울이 ‘유대교는 유대교 나름의 구원의 길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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