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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의 뱀은 말을 했을까? 본문

글/신나(신학생 나부랭이)의 글

창세기의 뱀은 말을 했을까?

BundleE 2020. 6. 1. 14:51

*”창세기의 뱀은 말을 했을까?” 라는 질문에

“2500년전 사람들은 그렇게 믿었을거다”라고 말해야 한다면 그 정도의 지성으로 이룩된 히브리 문학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지극히 비이성적인 것처럼 보이게 된다. 성경의 역사성(이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을 지켜내면서 문자주의적 해석과 거리를 두려다 보니 아담과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나눈 대화의 기록은 인간 저자의 “간증”이 된다(아담의 이야기를 정말 아담이 전했다거나 썼다고 믿는 것과 기독교 신앙이 동의어인가?).

이미 우리가 성서 본문에 대해 차별적 권위를 부여하면서 읽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러므로 성서 본문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분별해서 읽어야 한다고 충고하는 것과 성서를 전면적으로 비판적으로 읽는 것 사이의 경계가 그렇게 분명한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여기에 2000년을 넘게 교회가 지켜온 “정경성”의 권위를 잊지 않고 얹으려니 출구가 없는 말의 미로를 정신없이 뺑글 뺑글 돌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 정경적 권위 역시 성경과 마찬가지로 인간에 의해 아니면 최소 인간과 하나님에 의해 함께 부여되는 것이고 비판적 거리두기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모든 말장난을 떠나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전면적 비판적 읽기는 성서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기반했을 때만 가능하다. 신앙을 떠나는 경험을 역사비평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 "뱀이 말한 것은 그것이 신화이기 때문”이라고 가르쳐서가 아니라 뱀이 말한 것이 ‘역사’라고 가르치기 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것이다. 성인이 된 세계가 아닌가?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아담 신화를 문자적으로 보아 실제 역사로 해석함으로 영혼에 끼친 해악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그처럼 역사로 해석된 아담 신화를 나중의 사변 특히 어거스틴의 원죄 교리와 동일하게 보아 생긴 해악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신화와 사변을 한덩어리로 고백하게 함으로써 신학은 지성의 희생을 초래했다. 신화를 통해 인간 현실에 대한 초지성적인 상징성을 성도들에게 보여주어야 했는데 그렇지를 못했다. (폴 리쾨르, ⟪악의 상징⟫, 226)

유대 정신은 왜 악의 기원을 아담으로 보지 않았을까? 왜 제3의 것을 집어넣었을까? 1) 야웨 기자는 인간이 시험당하는 체험을 뱀의 형상에서 극화했다고 볼 수 있다. 시험받는 경험은 거의 바깥 경험이다. 시험은 밖에서 오는 유혹같고 죄를 짓는다는 것은 거기에 양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뱀은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일부다. 우리가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다. 바깥이면서도 안인 경험...탐욕 2) 인간의 역사적인 경험으로 보건대, 악은 이미 있더라는 것이다. 처음으로 악을 끌어들인 사람은 없다. 언어가 도구나 제도처럼 악은 인간 사이의 한 부분을 이룬다. 그것은 전달된다. 저지르는 악의 뒷면에 이미 악이 있다. 3) 탐욕의 투사 이전에 악이 이미 있다는 얘기에서 좀더 뿌리깊은 악의 외면성, 곧 악의 우주적 구조를 추정하게 된다. 인간과 신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비극이게 하는 것. 프로메테우스와 외디푸스, 그리고 욥은 혼돈에 가득찬 우주를 본다. 결과적으로 뱀은 인간에 대해서뿐 아니라 세상에 대해서도 무엇을 상징한다. 소우주 뿐 아니라 대우주를 말하고 있고, 내 안의 혼돈, 우리 사이의 혼돈, 그리고 바깥의 혼돈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나 곧 원래 선하고 행복하게 되어 있는 나에 대한 혼돈이다. 뱀을 이처럼 세 겹으로 풀면 왜 지하 동물이 비신화화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 지하 동물은 악의 한 측면 곧 인간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부분을 상징한다. (폴 리쾨르, ⟪악의 상징⟫,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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